by HBD
총 64개의 포스트
혼자는 싫다고 자꾸만 울어대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뭘까 바짝 구운 당근, 브로콜리, 젖은 치즈와 마른 요구르트, 얇게 저민 벌꿀과 생크림 모든 것을 섞어 만든 케이크에서는 세상에 다시없을 다정한 맛이 나는데 옆집에서 놀러 온 개가 그것을 몽땅 먹어치워 버렸어 너는 더 이상 울지 않고 그 개를 가만히 보고 있다 개는 긴 주둥이에 묻은 크림과 시트
아이들이 복도에 있다 그것들은 사람보단 장막과 더 유사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눈이 없는 아이들은 영원히 복도를 맴돌거나 뛰어다니거나 걷거나 그 위로 넘어져서 웃는다 긴 머리카락을 한 갈래로 높게 묶은 여자아이가 내게 말한다 너도 이 복도를 마음에 들어 하게 될 거라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나를 보고 아이들이 스쳐 지나간다 나는 조용히 신발주머니를 챙
어디까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끝이 날까 두려우면 사랑인지 영원을 확신할 정도로 진심이면 사랑인지 말도 못 붙이고 떨어야 사랑인지 그 정도는 이겨내고 고백할 수 있어야 사랑인지 보고 싶을 땐 참는 게 사랑인지 못 참고 보러 가는 게 사랑인지 현재에 충실해야 사랑인지 미래에 걸어야 사랑인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으니까 네가 답을 좀 해 봐 나 너
있지, 어느날 모두와 단절된 것 같다던 너의 서글픈 고백관 다르게 사실, 세계의 모든 것은 축적식이야 맥락도 연계도 상하좌우의 결합도 없이 불쑥 등장하는 것은 아무래도 꿈에서만 있을 법한 일이고 사실 꿈도 나름의 질서와 사유를 가지고 있으니 이런 예시는 아무래도 근거 없는 매도에 가깝네 사랑도 과거와 미래도 식욕도 관계도 자아도 유령도 분석도 언어의 체
심장을 닮아서 붉은색이라거나 반짝 빛나니까 노란색이라거나 희망을 담았으니 푸른색이라거나 신비로우니까 보라색이라거나 그럼 내 소원은 흰색이라고 할래 천사가 흰색이니까? 천사가 흰색이라고 누가 그래? 천사는 그다지 하얗지 않아 그냥 다만 지긋지긋한 삼촌이 죽었을 때도 너를 만났을 때도 내 주변이 온통 하얬으니까 그랬으니까…… 이번 겨울에 서울에 올라간
새로 산 바디로션에서는 레몬과 숲의 향기가 납니다 나는 복숭아 향을 더 좋아하지만요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수제 버거 가게에서는 쿠폰으로 직원의 포토카드를 줍니다 이런 창의는 어디서 태어나는 걸까요 최근엔 기다리던 후루츠산도 다이어리를 얻었습니다 먹을 수 없단 점이 포인트지요 가을 옷을 장바구니에 모두 담았더니 자그마치 이십 육 만 원이었습니다 작년
데스크에서 건네받은 처방전에는 다정함이라고 적혀 있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내가 먼저 손을 들었는데 아무도 없는 너머에서 누군가 괜찮다고 끄덕이는 것을 보았다 종이 석 장을 엉성하게 들 고 옆 건물로 가면 선생님께서는 오렌지색의 천사 스프레드 한 통을 주시며 말씀하신다 우울해도 잊지 말고 드세요, 나을 때까지 부족하면 더 받으러 오세요, 그래서 이 찢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꾹꾹 눌러 담은 편지에는 답신이 없다 하나 둘 셋 넷 쌓여가는 마음과 날짜에도 여전히 무응답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돌아오지 않는 마음은 나를 닦아내기 충분했고 덜그럭 덜그럭 빈 깡통엔 소리가 나기 마련 좋아해 그럼에도 습관처럼 보낸 편지에 ( ) 답신이 왔다
그토록 염원하던 너와 다시 한 번 입을 맞췄는데 나는 웃을 수가 없는데 다정한 손길은 꿈에 그리던 것인데 나는 기쁘지가 않은데 너에게서 이제 그만 죽은 이의 잔상을 보면서 우리는 서로를 목전에 두고도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데 길을 엇갈리고 맞물리지 못하면서 그런 식으로 맹인이 되는데 절망을 답습하는 나의 성정이 너의 우울을 끌어안고 잠식하는지 네가 붙들고
우물은 까마득하게 깊고 어둡다 그 안을 흰 우유로 채우자는 발상은 나름대로 획기적인 것이었어, 검정을 몰아내는 하양, 그런 것을 우리는 본 적이 없으니까, 들어 본 적도 겪어 본 적도 느리게 느리게 호출해 본 적도 없으니까, 그래서 그런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 했던 거야, 몇몇 아이들은 네 주장에 동조했고 몇몇 아이들은 너를 의심했고 몇몇 아
좀 더 어릴 때는 빨랫줄 사이에 지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청바지와 운동화 끈과 넓은 여름 홑이불 사이에서 누구나 새로운 우주의 냄새를 맡았다 속치마의 미끄러운 천 안에서부터 바람에 말리려고 내어놓은 신발의 밑창에까지 행성들이 있어 숨을 참고 건너가야 했다 왜냐하면 우주는 진공이니까 누구도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말할 수 없었고 숨을 쉴 수 없었다
11주차 주제 <수신 오류> 추억을 얼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불쾌지수가 드솟는 여름 그런 때 얼음을 물고 혀를 굴려 천천히 녹여 먹을 수 있었다면 우리의 사랑이 이렇게 멍청할 정도로 차가워지는 일은 없었을 텐데 입 좀 벌려 봐 얼려 왔는데도 왜 먹지를 못하니 너도 분명 좋아하던 거잖아 판판한 가슴 위로 축축한 추억이 흐른다 추억을 얼릴 수 있
같은 언어의 비슷한 소식 듣고 있어도 조금은 변한 얼굴로 손을 들어 쓰는 일기에는 무엇을 써야 맞을지 모르겠다고 너무 외로워 듣던 말로부터 계절의 냄새가 끼쳐올 때 너는 아직도 너는 이전인데 그들은 이후라서 너의 시작은 어딘가에 접해 있다 다시 출발하기 위해서는 그 접선을 밟지 않아야만 한다, 연필을 내려두고 선을 선으로 긋는다 선은 수평을
밖으로 밖으로 나오는 것만이 진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왜곡되어 버리고 마니까 사랑이라고 내가 발음하면 네가 그것을 사람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 나쁘지 않다고 덮어줄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 몰이해는 어디에나 있고 그것은 너무나 흔한 일이어서 어떤 식으로든 변명할 수밖에 없고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아 그렇게
11주차 주제 <수신 오류> 그곳은 다정하고 따뜻했니 나의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여물지 못한 손으로 목화를 따고는 했다 눈이 눈인 곳은 많지 않다지 밤이 오면 눈이 눈인 곳에서 눈을 잃어버려 그만 얼어버린 사람들이 나타났다 변기 속에서는 금붕어가 올라오고 하수도에는 버려진 악어가 가득하고 욕조 속에는 벌레에 갉힌 화분이 있고 너에게 전보를 보냈어
11주차 주제 <수신 오류> 내 생각에 너는 왔는데 내가 너를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어항을 보듯 자기 밖에 있는 그 수심을 살펴본다 수심 가득한 얼굴만이 되비쳐 나온다 저는 반전하거나 뒤엎은 모습이다 여기는 해역 구분이 불가능한 곳 그야 누군가의 사유지 생각하지 않고 물려받아낸 땅, 치를 떤다 수치심이다 나를 가두는 사람들이 미웠다 적어도 유리창
11주차 주제 <수신 오류>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이승파견부 소속 영혼에서 오랜만에 연락을 드립니다. 지난번 편지가 오류로 인해 누락되어 새로이 작성하여 송부드립니다. 반 세기 전 탄생 과정에 협조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원해주신 교통편으로 무사히 이승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현재 진행중인 '인생' 프로젝트를
11주차 주제 <수신 오류> 네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사람들은 네 이름을 알고 있었어, 가브리엘. 너를 칭송하고 찬미하기 위해 태어난 군중들이 있었어. 나는 어떤 신도 믿지 않으므로 신앙심이 없고 그래서 네 이름을 발음하는 일을 금지 당했지만. 사람들은 네 심장이 크리스털로 만들어졌다고 믿었어. 맥동하는 광물이 있다고 믿는 것은 걸어다니는 식초가 있다고
여자애라는 건 꿈꾸지 않고서 못 사는 족속이라 주된 몽상은 자신의 의지 없이 강요당한 삶에 대해 누군가를 재판대에 올려놓는 일, 이를테면 친부나 친모 그리고 사촌의 얼굴 툭하면 치미는 화에 화한 맛이 정신을 산화하여 괜찮아 이제 괜찮아 다독이는 어른이어 도, 시, 발 그건 내가 어쩔 수 없었다고요 한 세상에서만 내가 살 수 있었다니까 랑까랑한목소리로항변하
귓가에서 폭죽을 터뜨려서 미안해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서 그랬어 나는 그냥 네 기쁜 얼굴을 보고 싶어서 그랬던 것뿐인데 나도 정말 네가 이렇게까지 기분 나빠할 줄은 몰랐어 근데 왜 기분 나빠하는 거야? 그래 기분 나빠하는 건 그렇다 치자 그런데 헤어지자고 하는 건 정말 아니지 않아? 그래 폰 검사한 것도 미안 그런데 네가 다른 사람이랑 웃으면서 전화하는데
넌 그런 생각 한 적 한번도 없대니 불현듯 삶이 너무 길다는 생각을 필름 속 잘려나간 씬처럼 토막난 요지경 세상, 낸들 어쩌라는 건지 한동안 괜찮은 줄 알았더니 왜 또 존나 말썽이야 뇌가 고장난 느낌 재미없는 농담에 억지로 웃기도 야, 이제는 벅차단 말이야 그만해 아무렇지 않게 시를 쓰니 어떻게 무시할 수 있는 거니 이 목소리를 도대체가 나한테만 끔찍한
쓸 수 없다는 말을 써서는 안 돼! 그건 시의 불문율을 깨는 짓이다 너무 우울해서 죄송하다고 하면 안 돼! 그건 우리 사이 장벽을 깨는 짓이다 장벽은 너무 얇고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너는 도망가지 죄송하다고 하면 안 돼! 그렇다면 죄송할 짓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시인들은 언제나 늘 죄를 짓고 있고 태어나서 미안하다고 해서는 안 돼! 그건 수동 공격이잖
갈 데가 있어 모래시계를 거꾸로 뒤집을 거야 벗어던진 반지를 다시 끼고 아쉽게 떨어지던 입술을 다시 맞붙이고 바닷가에 나란히 앉아 서서히 지는 폭죽을 보고 온기를 나누던 손끝이 다시 네 손등을 간질인다 목전의 검은 동공을 한없이 바라본다 그런데 말이야 너는 내가 유일하게 온도를 알 수 있던 검은색이었던 걸 알아? 사실 지금도 그래 나는 아직도……
그때의 나에게 내가 필요하지 않았듯 지금의 너에게 내가 필요하지 않을 뿐 그러나 나는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 지 몰라 너를 떠나보내고는 누구를 만나도 너만을 생각하게 되었다 너를 놓아주는 것만이 나의 최선이었다면 지금의 최선은 너를 그리워하는 일일지 몰라 한 번 놓은 것은 영원히 떠내려 가는 것일까 그리워하는
사람은 원래 외로운 별이라고 들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해소할 수 없는 일정한 질량의 면적이 있어서, 그 공백을 채워줄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게 된다고. 내게는 너만큼 로맨틱한 구석이 없고 그래서 모든 소문과 신화를 믿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만약 정말로 내게 딱 절반만큼의 공간이 비어있다면 그곳을 채우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여야만 한다는 것을 알아.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네가 없으면 어떡하지 햇빛에 강렬하게 부딪는 회색 빌딩숲 햇빛이 차르르 부서지는 푸른 바닷가 햇빛을 가로막는 초록빛 등나무 아래 어디 있는 거야 어디를 둘러봐도 죄 흔적뿐인데 너랑 있었던 일이 다 꿈만 같아 그럼 나는 어두운 골목길을 어스름하게 비추는 달이라도 쫓아야 하나 문득 그러려다 싫증이 나 달을 담은 소주잔을 바닥에 내
아, 시 써야 하는데 시가 안 써져요 선생님, 저, 시 다운 시라고는 한 줄도 못 쓰겠어요 어떤 문장도 마음에 들질 않아요 시는 어떻게 쓰는 거죠? 저는 글렀나 봐요 글이라곤 한 줄도 나오질 않으니 글러먹은 게 틀림 없죠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어쩌면 평생 못 해 먹겠어요 다 못 해 먹겠다고요 나는 시간도 돈도 쓰는 법을 모르는데 그래서 시간은 죽이고
너의 납작한 손들이 나의 비명을 눌러 괜한 빈축을 샀다 화분을 베란다에서 욕조로 옮긴 후 욕실에서는 자꾸 금붕어의 냄새가 난다 욕조 속에 물고기를 넣은 적이 없는데 이것이 후회인가 생각한다 물이 스민 솜의 단면처럼 섬세하고 스산한 외로움이 든다 사랑에 그늘이 지고 금붕어 없이 홀로 있는 욕조 속의 산세베리아에게도 화가 난다 본디 외로움이란 막연하여
끝은 주는 것 사전에 약속한 대로였지? 끗패를 내밀고 우리에게 올 수 없는 봄밤에 서자 이기면 쪽박이야 그러니 잘 지는 법을 배워 두렴 단칸방을 절절 울려대던, 전화를 꺼야 한다 이미 잃어버린 한 마디 한 마디가 너의 영리한 구사 내가 구사한 아름다운 무용함 내 사슴의 청단 위로, 위로, 위로 어쩌면 위로가 필요해진 나에게 놓이는 그의 봄과 여름 봄에 벚
팔뚝에 그림이 있는 남자애가 말했다. 개도 잠을 자느냐고. 나는 평생 개가 눈을 번뜩이며 맞이하러 달려 나오는 장면밖에 본 적이 없다고. 그러면 난 그의 팔뚝을 톡톡 두드리며 조금 웃어버리고 만다. 물론, 개는 잠을 자지 않는단다. 그들이 얼마나 충실한 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면 넌 지금보다도 훨씬 더 놀랄 수밖에 없을 거야. 그러면 그 애가 안심이라는
반듯하게 잘린 직사각형 편지지가 세상에서 가장 난해한 문제집 같다 사랑의 해를 구하고자 한다면 답은 2일지 몰라,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5는 아닐까, 어쩌면 오해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골몰하는 내내 그래도 당신의 생각을 하려니 낯선 즐거움 편지 한 줄마다 들어간 한 수식어가 마음의 자물쇠을 푸는 수식이기를 골몰하는 심정으로 쓰는 편지에는 깜박 졸다 쓴
일변 눈을 감아야지만 보이는 것이 있다 누군가의 시선 같은 건 원래 그렇게 해야 더 잘 보여 단심은 아무래도 편벽적이니까 그 누구의 이해도, 공감도 다 필요 없어 설령 그게 너라고 할지언정 그런 게 뭐가 중요해 내가 말하잖아 나는 널 사랑한다고! 두 눈이 온전한 너는 도무지 내 말을 믿어 주질 않고 내 고백은 유리병에 담긴 채 한강 윌 배회하는 노
멀리? 생각보다 가까이 손끝으로 가리키리 호박을 눈꺼풀에 매달고 아린 배를 생각하며 아삭거리는 돌을 구우면 떡이 된다고 그런 이야기를 철썩같이 믿으며 여름 자갈을 쥐어 삼킨다 어린 이가 아스스 츠츠츠 우는 새와 쯧쯧쯧 혀 차는 소리를 구분할 수 없어서 호호호 우리 애도 참 돌맛은 피투성이인데 떡도 그러려나 책가방을 손끝에 걸고 팔 층 밑으로 떨구며
(HBD) 각주가 있는 시의 특성상 요청해 주신 이미지 형태로 업로드 해 드립니다. ^.^ 아래는 복붙하기 편하시라고 옮긴 전문이므로, 각주는 꼭 상단의 시를 참고해 주세요. 선생님 이 세상에 선생님 말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요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일인지 설명 좀 해주세요 샛노란 여름은 첫사랑의 유사어라고 하셨잖아요 여름의 어디에도 노랑
우리 모두는 살과 껍질로 이루어진 단일 유기체들. 울타리를 꺾고 그 속에서 노니던 양 떼 같은 핏줄을 엮지 않는 이상 영원히 외로울 것. 그것 역시 인류가 고안해낸 슬픔의 한 갈래겠다만. 나도 안다. 그의 어린 마음. 하지만 어린 것은 늘 미성숙한 것이 아니고, 미성숙한 것은 언제나 결여된 상태가 아니고. 그것들은 그 자체로 완결된 하나의 상태인 것. 그
희망이 산개하는 봄날에도 절망이 만개하는 마음이여··· 떨어지는 것과 즐거운 것이 같은 소리라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추락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지 언어의 경이에 몸서리 치면서 낭떠러지 밖으로 우리 모두를 산산이 내던지고 싶었지 깎아지른 절벽에는 다듬어낸 슬픔과 즐겁고도 명랑한 우리의 하늘 떨어지는 건 정제된 울음 살아온 궤적 서
아감자가되고싶어넓적하고둥글둥글폭신폭신한찐감자흙이잔뜩묻어서피부마다파고들어서점박이가되어도그게본래의모습인감자아무리깎이고굴러도아무도더럽다고하지않는햇감자모르는사람의식탁에올라가잡아먹히고싶어내자아같은건처음부터영영없었던것처럼뜨거운냄비안에서푹푹익어가고싶어난뭐든될수있어감자채볶음감자빵감자조림감자샐러드감자튀김감자전감자고로케뇨끼옹심이볶음밥에그인헬카레닭볶음탕무엇이될지는고를수없지만
뒤늦은 택배가 도착했다 피나 유전자 같은 게 섞인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닮은 구석이 많았던 우리의 조각 서른여섯 개 중 맨 처음은 꼭 우리를 담자고 했던 약속을 기억해 덕분에 나는 여행을 했다 좋아하는 색으로 맞췄던 초록빛 비즈 반지 서로의 매일을 꾹꾹 눌러 적던 육 공 다이어리 블루투스 기능을 두고 매번 흰색 줄 이어폰을 꽂았던 씨디 플레이어 삼
5월의 마지막 주제 <유령이 된 나는 어디로 가면 좋을까> 빗소리를 듣고 네 빗장뼈를 닫는 소리를 생각했어 발의 뒤꿈치까지 일렁이는 여름 너는 새로 산 신발이 맞지 않아 발이 다 까졌다고, 보호받지 못하는 뒤꿈치에 여름이 자꾸 닿아 아프다고, 이러다 장마가 오면 발이 쓸려 내려갈 거라고 했지 너는 살갗이 아플 때마다 뼈를 잠가달라고 부탁했어 그래야만
당신이 나로 착각하는 여자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무대 위의 선셋 럼 어색하게 씹히는 나의 부럼 길흉으로 난 나는 여기에 얼어 있어요? 어쩌면, 거기서는 내가 되면 안 되거든 얼음을 유리 거울 삼아 나를 제삼자의 눈으로 드레스가 빨간 빛이야 틀렸습니다 묘하게 붉은 석양의 얼굴 스프링클을 얹어낸 비포어 선라이즈 미묘하게 흔들 때 발생하는 스파클 스팽글, 뒤
나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고 우는 놈 앞에서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냐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같이 울어 줘야 하냐 사랑과 공상과 시와 마음에 대해 떠드는 것들은 전부 다 위선자야 사람은 그런 것들에 대해 논할 자격이 없어 네가 시니컬한 웃음과 함께 펜촉을 손날 위에서 휘휘 돌리고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다는데 같은 스물이 되어도 너와 나는 이렇게나 다
개를 데리고 다니지 않는 산책을 한 적이 있는가 한적한 오후 개는 나가지 않겠다고 그림자 속이 아늑하고 시원하다고 그 밖으로 갈 수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야 너 참 고집이 세구나 결국 산책은 숨을 그림자 없는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것 나는 산책을 나왔다가 비어 있는 의자 무리와 마주친다 꽃가루가 의자 위에 소복하다 의자에 앉아도 될런지 허락을 받으려고 하는
5월의 마지막 주제 <유령이 된 나는 어디로 가면 좋을까> 귀에 꼭 맞는 이어폰이 없어 자꾸 네 음성이 미끄러져 네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어 그 사실을 견딜 수 없어 도망쳤는데 너 없으니 언어도 세계도 육체도 없구나 없다는 건 너무 이기적이지 않아? 없어진다는 거? 아니 없다는 거 내 손에 쥘 수 있는 전부가 멀리멀리 있다는 게 더 이상 남아있지
5월의 마지막 주제 <유령이 된 나는 어디로 가면 좋을까> 언젠가 너는 지나가는 말로 꼭 죽은 것을 본다고 한 적이 있다 그것은 정확히 어깨에 머리위에 혹은 등전체에 매달린 채 웃고 바람으로 비로 혹은 눈으로 머무는 것은 없다고 또 너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럼에도 생과 사는 너무 멀어서 그리고 너무 아 득 해 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마도 영
5월의 마지막 주제 <유령이 된 나는 어디로 가면 좋을까> 현악기가 자신의 살을 벌려 내어주면 나는 그 줄을 밟고 오래 잠들고는 했습니다 당신의 기울어진 어깨축을 따라 비단의 셔츠가 흘러내리고 선상 위에 그은 오래된 상흔 다섯 줄이 당신과 나의 춤이 되었지요 오션의 코드로 갈까요? 나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고 있었습니다, 나의 발을 묶었던 우리의 노래
5월의 마지막 주제 <유령이 된 나는 어디로 가면 좋을까> 오늘을 마지막으로 저지르는 숨바꼭질 헤어질 수 없다고 말하자 너는 평생에 걸친 다짐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 둔다 퇴근을 하면 늘어나는 목덜미 주름마다 척척한 한숨이 흐른다 찌든 냄새가 나는 고백을 유황처럼 발라 주어야지 그대의 허심한 속을 손이 없는 둥지로 덮어 주어야지 변방의 넋두리가 될 테야
5월의 마지막 주제 <유령이 된 나는 어디로 가면 좋을까> 일어났을 때 손이 없다면 누구를 가장 먼저 불러야 할까 나의 가장 큰 결핍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name]을/를 소리쳐 불렀어요 목이 끓으면 내장은 온통 여름이라 복강 안에서는 바람도 불지 않고 매미도 울지 않고 [$name] [$name] 자꾸 불러대도 집안엔 나 혼자뿐이고 사태를 정
나는 이 수렁에서 태어난 자 길모퉁이의 안쪽 구석 가로등 불빛조차 닿지 않는 그곳에서 내가 탄생했다 누가 하수구 사이에 버리듯 날 낳고 말았을까 누가 날 악취와 오물과 잿더미 속에 던져 넣었나 이 구덩이의 나는 또다른 나를 좀먹고 뱃속에 고인 시체를 토하며 시간을 지난다 캄캄한 기분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 하루를온통까맣게견디는사람은그것을정의할수
무엇을? 그리워할 수 없는 혀를. 나의 허를, 선생의 허물을 타는 달군 팬으로 지지고 익는 냄새에 익은 우리. 그것이 사람의 살이래도. 혼란해하지 마! 덧날 수도 있어. 허리. 위험한 것이 전부가 아닌데 우리는 위험한 것만을 추구하지? 다리. 나는 뒤집히려고 태어난 거야. 다리. 주워 온 발꿈치를 구두에 구르면 적당한 형태감으로 다리가 완성돼. 뭐 이딴
이 글에 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그의 입을보았기 때문에. 쩍벌린 입, 달팽이의 식도처럼 무수한 이빨 마지막 민물인어는 우리 할아버지가 쓴 조총에 맞아 죽어버렸어 그때 죽은 닭이 깨버린 거야. 퍼드득 하고 그리고 우리 곁에 언제나 함께 있어준 고래 사체가 해변으로 떠밀려오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 민물은 결국 바다로 가기 마련인데 민물 인어는 거기서도
울음을 참으면 눈꺼풀에 아가미가 생긴다 우는 법을 막 배운 내게 들이닥치는 꿈의 알갱이 한 사람을 응시하는 두 눈이 각기 다른 소용돌이로 물결칠 때 흰진범의 향기 톱니 이빨 조각난 소라 고동 소리 깨진 마음을 주우며 기필코 일기장의 모서리를 접지 말아야지 너의 흔적이 커튼콜처럼 펼쳐지는 말미암은 수심 너는 파란 수국을 심
지금은 선생님만 즐거운 시험 시간 다음 <보기> 중 가장 나쁜 사람을 고르세요 <보기> ① 풍선 ② 라디오 ③ 고무장갑 ④ 긴수염고래 ⑤ 거짓말에 인이 박여서 속은 뻔해도 차라리 다정해 보이는 사람 드디어 시험 문제 출제 지옥에서 벗어나신 선생님은 교단에서 푸 푸 주무신다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지 않으신가요 모든 문제의 답이 ⑤번인 거 말이에요
그는 5년 전에 나를 떠나 다시는 이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아끼던 벽난로에 불을 붙여 보아도 흔들의자를 두고 뜨개질을 해보아도 버터스카치파이를 구워 준비해놓아도 저 빈 의자에 다시 앉지 않는다 청량한 여름 하늘 아래에서 땀 범벅이 된 얼굴로 운동장을 가로질러도 스포츠 음료를 단숨에 들이키고 찬물을 머리에 쏟아부어도 수줍게 고백을 받을 야구부원이
만질 수 있는 조각은 전시회장 뒤편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여자는 표지 설치의 마무리 작업 중에 아리송해진다 우리가 삼차원의 세계에 어떤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무엇을 조각한다고 해도 그것이 결국 인간의 시신경에 의해서만 감상될 때 그는 자신이 깎아 문지른 시간이 일차원이나 이차원과 무엇이 다른지 의문해진다 그것은 펼쳐질 수도 없고 이어질 수도 없어서 궤적
잊으려고 하면 잊을 수 있습니다 그의 발톱이 심장을 굴착하고 도굴하더라도 이것은 심장입니다 나의 몫과 나의 것을 구별하지 못하더라도 이것은 심장일 수 있습니다 허파일 수 없습니다 숨을 쉴 수 없습니다 색색 숨이 색색 숨을 헐떡이고 탯줄로 묶인 안짱다리가 경쾌한 블루스를 춥니다 해방되는 숨 지각 운동을 시작하면 창문의 바깥에서 비춰 오는 일광 거듭 태어나는
지난 추억을 답습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공통된 버릇입니다. 사실 그 추억은 나의 것이라든가 당신의 것이 아니고 인류에게 균등하게 배분된 이상한 기억일 뿐이에요. 만들어지고 주물러져서 학습된 것입니다. 나는 단 한 번도 여름다운 여름을 겪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너무 명랑한 네 앞에서 결코 이런 말을 지껄일 수 있는 자신은 없고 나는 자꾸만 없는 누군
네 생각이 모여 달게도 익었다 허벅지가 달랑달랑 드러나는 바지를 입고 정사각형의 평상에 앉아 커다랗고 동그란 수박을 쪼개 먹는다 과육을 내 심장으로 만들었어 새빨갛고 물이 많은 조각들을 너에게 줄게 씨 한 톨도 남기지 말고 씹어 삼켜줘 너의 목구멍을 타고 흐르고 넘쳐서 난 그곳에 집을 지어야지 무럭무럭 자라 심장이 되고 적혈구가 되어야지 널 탐험하기 위해
사람들이 북적이는 호프 집 사람들이 어떤 희망을 찾아 모이는 곳이라 호프일까 가만히 생각해 본다 그게 아니라면 맥줏집 정도로 써도 되잖아요 아니지 홉을 쓰니까 그런 거지 근데요 선배 홉의 철자도 에프가 아니라 피로 끝나잖아요 그러면 호핑과 홉핑은 다를 게 없지 않은가요 아니지 그러면 피가 두 개가 되니까 홉핑과 호핑은 다른 거지 홉핑과 호핑이요 응 홉핑과
모조품으로 명명되고 박명하는 사나운 날짐승 사지가 매듭 지어진 채 둥글어 과녁판으로 오해된다 편해지고 싶었니 언제나 달아났니 병식을 외면하고 밑동이 다 드러난 거목은 음울한 심판자의 얼굴로 살촉을 내민다 작은 손을 내게로 나를 잡아 혼란을 피 흘리지 마 나를 잡아 고작 한 칸짜리 숲입니다 하나인 나와 하나인 숲 안에서 펼쳐지는 내 것
천국에 입장하려고 줄을 서고 있는데 웬 아이가 내 소맷귀를 잡아당겼습니다 천사님 어디로 가야 지옥에 입장할 수 있나요 천사님 그곳에 제 개가 있어요 천사도 가이드도 선생님도 아닌 내 이맛전에서는 작은 땀방울이 맺힌다 여기는 덥지도 춥지도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고 구름 위의 세계엔 날씨랄 게 없는데 얘야 본디 개로 태어났다면 그 애는 무조건 천국에 갔을 거
도망치고 싶어 지금이 아닌 곳으로 매일 오늘을 떠나 살고 싶었다 내 몫의 행성이 필요해 우주 먼지처럼 아주 자그맣고 조그마한 나만의 사탕 차라리 아주 둥글어지고 싶었다 이 대지에 나를 모두 소진하고 싶다 돌아오지 않는 라일락 가지를 꺾으면 그건 나의 일부가 되나 아 다정하고 싶어라 아 혹독하고 싶어라 꾸며내지 않는 삶의 방식 같은 건 정말로 알 수
아이스크림은 항상 막대기와 가까운 곳부터 핥아먹기 누굴 기다릴 땐 벽에 기댄 채로 신코를 바짝 들기 흔들거리기 나무를 볼 땐 그 위에 얹힌 둥지를 찾기 버스를 탈 땐 늘 맨 앞자리에 날이 좋은 초여름엔 색 없는 선크림 꼭 잊지 말기 그 모든 버릇을 나 아직 잊지 않았어 이렇게 화창하게 말해도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리본보단 넥타이가 좋고 곰돌이보단 편지
나는 너와 만나야 했다 나의 머리가 늘어져 강에 닿았을 때 몸통을 숙이면 네가 흘린 눈물로 온 세상이, 퍼렇게 공명할 때 나의 신발은 여전히 거기에 있어서 너를 담으려 애쓴다 앞날개 부러지고 몸을 못 가눠도 좋았으니 이미 내가 키운 슬픔은 나 섰던 곳에 가득이다 내 슬픔이 멸종하면 나도 그때는 정말로 없겠지 욕설 추모 장례 천도 제사와 책임 공
뚝뚝 흐르며 천국 앞에 서 본 적 있나요. 나는 오차적 사랑으로 태어나 거세당한 사슴을 알아요. 그는 잘린 뿔로 연인의 부른 옆구리를 치받고 빨간 약속을 받아먹는 습관을 가졌어요. 생의 고열은 어쩜 이렇게 뜨거워요? 내가 기다리던 것이 진정 맞나요? 연인의 텅 빈 눈동자는 어쩜 이렇게 나를 바라봐요? 우리 똑같은 것을 기다리고 있었잖아. 이번 생에서는 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