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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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더, 타마코마 지부 소속 A급 전투원이자 사이드 이펙트 보유자, 자칭 실력파 엘리트 진이 볼 수 있는 건 살아있는 사람의 미래였다. 따라서 살아있지 않은 자의 미래 또는 사물의 미래는 볼 수 없었고, 진의 눈앞에 있는 그것은 둘 모두에 해당하였으므로 진은 그것의 미래를 볼 수 없었고 거기까지는 예상 범주에 속한 일이기도 하였다. 음, 역시. 안 보이네.
* 팬아트입니다. ‘공주’를 처음 본 순간 ‘쿠마’는 생각했다. 우리는 대대손손 저주를 받으리라고. 물 한 방울 없는 뭍 위에서 익사하리라고. 분명 그러리라고. * ‘공주’는 쿠마가이 유코가 ‘레이’라는 이름을 알기 전 마음속에서 혼자 그를 부르기 위해 붙인 이름이었다. 쿠마가이가 그를 ‘공주’라 명명한 이유는 단순했는데, 그를 처음 본 순간 그 외의
292. 왜냐면 당신은 결국 당신의 행동을 바꾸지 않을 테니까. 당신은 당신이 판단한 결정대로 행동하길 망설이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바꿀 수 있는 사람에게, 들어줄 수 있는 사람에게 당신을 구해달라고 말하는 것은, 알아. 비겁하다는 것을.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를 들은 지금도 당신의 ‘스크린’은 바뀌지 않으니까. 당신은 바뀌지 않는 사람이니까. ‘바꾸지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로 보인 것은 분명 사람의 손이었다. 사람의 손을 보았기에 구조대원에겐 망설일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급히 동료에게 무전을 한 그는 그들이 오기를 기다려 잔해를 함께 들어 올렸고, 그곳에서 의식을 잃은 한 남자를 구조했으니 벌써 사흘 전 일이었다. 잔해에서 구조되어 인근 병원으로 후송되던 남자는 구급차 안에서 의식을 회복했다. 그는
* 팬아트입니다. “슈지, 잠시만 이리 와 볼래?” 오늘, 어쩐지 계속 따라다니는 듯했던 눈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화단 가장자리 대리석 턱에 걸터앉아 있던 아즈마의 손짓에 미와가 그에게로 다가갔다. 슈지라고 이름이 불리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곁에 서자 어디 한번 보자, 하고 손을 잡는데 뿌리치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 것이 그동
* 팬아트입니다. 여든여덟 개의 건반 위를 막힘없이 흐르는 손가락은 오래전 당신이 일러준 대로 암기한 악보를 따라 움직인다. 마디와 마디 사이엔 음표와 쉼표, 조표가 그 안을 빈틈없이 채우고 이따금 이전과 다른 박자를 주문하는 박자표가 그 안에 있기도 한다. 그 외에 스타카토 같은 악상 기호가 주어진 음의 길이를 짧게 줄이기도 하는데, 그 뒤 페르마타가
* 지인에게서 첫 문장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레플리카는 복제품, 사본이라는 뜻이다. 쿠가 유고가 아들 쿠가 유마 탄생 이후 그를 감시, 보조하기 위해 제작한 트리온 병사에 어째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평소 아비의 가르침조차 맹신하지 말라 말하던 당신께선 어째서 아이를 위한 도구에 레플리카란 이름을 붙이신 건지, 쿠가 유마 본인도 그
모든 것이 여기 있었으니 떠날 수 없었다. 여전히 여기 있기에. 이제는 영원히 여기에 당신이 있을 것이기에 떠날 수가 없었다. 별수 있겠나. 당신이 여기 있겠다는데. 그게 당신의 뜻이라는데. 당신을 두고 떠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만 혼자 당신을 이곳에 둔 채로 떠나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당신은 떠나지 못하는데. 당신은 떠날 수가 없는데……. 누나의 장례
이야기에도 끝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에도 끝이 왔다. 노이즈까지 한데 섞인 모든 소리에서 그는 제가 아는 목소리를 구별해낼 수 있었으니 그쯤이야 조금도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날의 진상을 확인하기란 이토록 간단하고 편했다. 어려운 것은 확인이 아닌 진상일지니. 조금도 쉽지 않을 인정일지니. 장치에 저장된 녹음된 음성이 그대로 재생되었다. 녹음 속 목소
‘스나이퍼는 발견되어선 안 된다.’ 그것은 그가 오래전 자신의 제자들에게 가르친 스나이퍼의 기본으로, 기본에 충실히 행동한 아즈마 하루아키는 뛰어난 스나이퍼였으나 아쉽게도 가장 뛰어난 스나이퍼까지는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노련한 스나이퍼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트리온체가 파괴되어 본체로 돌아온 직후 사선을 피해 몸을 숨긴 그는 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아
이미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자신은. 위선은 그만두는 게 좋을 거라고, 당신은. 그러다 살해당할 거라고. 그러다 죽을 거라고. 그제야 알게 될 거라고. 그제야 당신은 무엇을 알게 되나? 네이버가 적이라는 것? 우리는 적극적으로 그들의 구제에 힘써야 한다는 것? 죽은 뒤에야 알게 되나? 죽은 사람이 무얼 알 수 있는데. 무얼 할 수 있는데. 아는 건 산 사
병원에서 보더 본부 내 구금실로 옮겨진 그것의 정체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보더의 엔지니어들은 유능했으므로 그들은 곧 그것이 트리온으로 이루어진 신체임을 밝혀낼 수 있었다. 즉, 트리온체였다. 한편 그것은 보더 내부자들 사이에서 ‘그것’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그것이 자신을 ‘아즈마 하루아키
“키리에.” “너……!” “……선배.” “늦었어!” “으앗.” 등을 내려치는 손은 매섭기 그지없다. 하지만 트리온 전투체로 전환하지 않은 지금으로선 맞아도 버틸 만은 하였다. 힘을 주지 않아서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아픔은 확실하게 전해져왔으니. 그러니 버틸 만하다는 건 금세 아픔이 가셔서는 아니고, 그에 상응하는 보람이 있어 한 번 더 도전할 만하다는
* 폭력성, 잔인성, 사망소재 주의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로 보인 것은 분명 사람의 손이었다. 사람의 손이었다고 한다. 사람의 손을 보았기에 구조대원에겐 그를 구하는 데 망설일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급히 동료에게 무전을 한 그는 그들이 오기를 기다려 잔해를 함께 들어 올렸고, 그곳에서 의식을 잃은 한 남자를 구조했으니 벌써 사흘 전 일이었다. 사흘 후
* 팬아트입니다. 아즈마 하루아키는 특별히 모나지도 별나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저어하는 행동에는 저어하고, 망설이는 행동에는 망설이며, 과감하게 저지르는 행동은 과감하게 저지르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자신을 평가하는 사람이었다.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로 일컬어지는 사람과 같이 타인과 감정적으로 교류하거나 공감,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A급 랭크전 3라운드는 타치카와 케이에게 이른바 종합선물 세트나 다름없었다. 지난 2라운드에서 카타기리 부대를 2점 차이로 꺾고 승자가 된 타치카와 부대가 만난 3라운드 사파전의 상대는 다음과 같았다. 카코 부대, 니노미야 부대, 그리고 미와 부대. 과거 유이가가 타치카와 부대에 합류하기 전, 타치카와는 당시 A급 1위 부대였던 아즈마 부대를 꺾고자 슈터
블랙 트리거 풍인의 소유자를 가리는 일명 ‘후보자 쟁탈전’에 관한 공문이 내려왔을 때 공문을 읽은 아라시야마는 다만 말했다. ‘그래서 진이 요즘 예민했구나.’ 공문을 받은 건 일전의 테스트에서 풍인을 기동하는 데 성공했던 대원들로, 곧 대상이 아닌 대원들에게도 알려지지만 아라시야마 부대인 데다 때마침 아라시야마가 공문을 확인할 때 곁에 있던 카키자키는 그들
아즈마 부대가 일주일간 휴가를 받았다. 보더의 휴가는 사용 시기에 제약이 거의 없음에도 주로 중고등학교가 방학에 들어가는 시기에 맞춰 사용되고는 했다. 가용 인원이 늘어나는 시기이기에 일정을 통보하거나 대타를 구하기도 편하고, 하루를 종일로 푹 쉴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학교도 안 가고! 그야 방학이니까! 집에서만 뒹굴거려도 만족스러울 한여름 가운데 일주일,
“성이 특이하네?” “아, 예.” * 고등학교 입시 하나 실패했다고 남은 인생에 주어진 모든 미래가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게 아닌 건 알지만, 알면서도 저조해지는 기분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 오지 카즈아키의 기분은 저조한 채 그대로였다. 면접 전까지는 문제없이 통과했으니 역시 면접에서 보여준 태도가 문제였겠지만, 오지는 아직 열다섯 살에 불과했고 불쾌함
존경하고 있습니다. 존경하고 있어요, 정말. 그렇다고 뾰로통한 얼굴에서 쉬이 가시는 불만이 아니었다. 식사 당번쯤이야 바꿔주지 못할 것도 아니란 걸 알면서도. 거기다 사유도 분명하고 중요하지 않았나. 마지막 랭크전을 앞두고 니노미야의 대책을 세우는 것이니 넓은 도량으로 이해해 주지 못할 것도 없고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좋아, 식사 당번은 내가
점수 이동을 건 개인 랭크전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상대 역시 동의한다면 누구든 대전 상대로 선택할 수 있었지만, 관전자들에게도 그 내용을 공개하도록 되어 있기에 같은 부대에 속한 두 사람이 개인 랭크전에 참여하는 예는 많지 않은 편이었다. 장난 또는 내기로 이뤄지는 단판 또는 5선승제 승부 정도가 아니라면 작전실의 부대용 훈련실을 두고 대놓고 전력
이 땅에는 머리가 아홉 달린 뱀의 신화가 있다. 아홉 중 하나는 불사라 죽일 수 없지만, 남은 여덟도 호락호락하게 당해주지는 않는지라 머리 하나를 베어내면 그 자리에 머리 둘이 새로 자라났고, 이 무한히 증식하는 거대한 독사를 해치우기 위해 신화 속 영웅은 머리를 베어낸 자리를 불로 지져 재생을 막고 불사의 머리 하나는 바위로 짓뭉개어 다시는 고개를 들지
미카도시에 위치한 네이버 대항 방위조직 ‘보더’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괴담이나 전설같이 대원들의 입을 타고 내려져 오는 진위를 알 수 없는 이야깃거리가 몇 가지 있었으니, 흔히들 7대 미스터리니 뭐니 하면서 손가락을 꼽아 세는 대표적인 미스터리에는 보더 내 최초의 스나이퍼란 영광스러운 칭호의 소유자, 아즈마 하루아키의 주량이 한자리 차지하고
* 폭력성 주의 적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보더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 사이로 보더가 정착할 때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청소년 전투원을 양성한다는 보더의 본질적 한계와 최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경청해야 옳았지만, 네이버를 신처럼 숭배하는 사이비 종교라던가 네이버로부터 입은 피해를 책임지고 그들의 울분을 해소할 대상으로 보더를 선택한
* 전편 4. Too Young to Die 코아라이 노보루가 다리에 깁스를 하고 나타났다. 아즈마는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본부에 들어오기 전 트리온체로 신체를 전환했기에 그가 정말로 깁스를 하고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반은 아닐지라도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오쿠데라 츠네유키가 코아라이의 행방을 묻는 아즈마에게 그가 지각하는 이유에 관
* 전편 3. Undying 아즈마 하루아키를 죽이기란 쉽지 않았다. 지난 시즌 그가 자의가 아닌 타의로, 즉 트리온체 파손으로 베일 아웃 한 수는 단 한 번이었다. 그는 랭크전에 참여한 모든 B급 대원 중에서 가장 높은 생존율을 기록했으며 그 자신이 키자키 레이지에게 가르쳤던 스나이퍼의 기본을 잊지 않았다. 그가 가르친 기본은 다음과 같았다. ‘스나이퍼
아직 한 번도 베일 아웃 된 적이 없다고요. 이제 막 B급으로 올라온 소년을 보며 아즈마가 말했다. 그래. 시노다가 대답했다. 입대 전 치르는 트리온 적성 평가에서부터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는 소년은 이쪽의 말소리가 들릴 리 없는데도 어디서 제가 칭찬받고 있다는 걸 아는지, 당당히 턱 끝을 치켜든 채 자신에게 내린 대기 명령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트리거
* 폭력성, 잔인성, 날조 주의 1. Interview 전 그때 그 애가 죽은 줄로만 알았습니다. 착각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음을 아실 겁니다.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매몰되고, 아비규환이었죠. 저는 천장 절반이 내려앉은 실험동 건물에 갇혀 있다 구조되었는데, 나중에 바깥 상황을 들어 제가 굉장히 운이 좋은 편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교정에 나와
미와 슈지는 보더 내에선 제법 흔한, 네이버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 중 한 명이었지만 그것이 그가 가진 복수심이 다른 이들과 같을 이유는 되지 않았다. 눈앞에서 가족이 살해당하고 그 모습을 목도한 아이의 심정은 겪어보지 못한 이에게는 짐작조차 버거운 법이기 때문이었다(슬프게도, 이것 역시 보더에선 제법 흔히 공유되는 사례 중 하나였다). 다행인지 아닌지 제법
미카도시에서 네이버에게 가족을 잃은 이는 많았지만 모두가 동일한 형태로 상실을 경험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미와 슈지는 제1차 대규모 침공에서 트리온 기관을 노린 트리온 병사에 의해 누나가 살해당했고, 소메이 하나는 네이버에 의해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부모님을 잃었다. 하토하라 미라이는 남동생이 납치당하여 생사를 알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래도 앞의 두
오비시마 유카리는 올라운더였기에 그의 트리거 홀더에는 아스테로이드와 하운드뿐만이 아니라 어태커 트리거인 호월과 옵션 트리거 선공이 장비되어 있었다. 본래 보더에서 제작한 제식 트리거는 모두 보더가 소유권을 가지고 있어 회수하는 것이 원칙이나, 보더는 오비시마 유카리가 속했던 부대의 대장 유바 타쿠마의 요청을 받아들여 잠시간 오비시마 유카리의 트리거를 보유,
4월의 이상 고온이 멈추지 않았다. 7월이나 8월쯤 되어야 할 것 같은 기온의 상승 질주에 때 이르게 옷장 안을 정리하여 여름옷을 채워 넣어야 했다. 올해 얼마 입지 못한 봄가을의 옷은 리빙박스 안에 차곡차곡 개어 넣어 놓고, 여름 난방은 옷걸이에 걸어 손 뻗으면 닿는 옷걸이 봉에 하나하나 걸어놓는다. 옷장 안은 깔끔하니 의외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는 집안으
“―가 죽었대. 자기 대원을 지키다가.” 어느 때고 그 말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느 때고. 아무 말도. 제3차 미카도시 대규모 침공. 정규 대원 중에서 사상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4월. 사망자는 대장급에서 유독 많이 발생하였고 그 이유도 다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무턱대고 무모하게 적에게 덤벼들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 정도 분별도 없
학교 근처 카페에선 격월에 한 번씩 사장님의 신작 파르페가 출시되었다. 두 달에 한 번이라고 해도 신메뉴를 구상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닐진대 가게의 자부심을 걸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사장님의 기개는 가히 감동적이라, 예고된 날이 가까워져 올수록 기대하며 기다리지 않는 법을 이코마는 도통 익힐 수가 없었다. 대학에 진학한 뒤 알게 된 카페였다. 입학식에 참
7 사람이 아닌 것이 당연한, 그리고 분명한. 사람으로 칭해서는 분별을 잃고 마는 환상, 환청, 환후. 그 주제에 반대로 옷깃을 여미고, 목은 흰 깃으로 빈틈없이 감싼 그것. 눈을 감아 보지 않으면 그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꼭 산 사람처럼 굴지만, 내려간 앞머리를 파득 올라간 어깨 따라 흔들며 평소처럼 대꾸하기나 하지만, 뇌 내의 환상에 불과하다. 그러니
4 구 카자마 부대, 현 우타가와 부대의 유일한 중학생 대원 스즈이 미나토는 작전실로 가져온 수학 숙제의 남은 페이지를 팔랑팔랑 넘기다 이윽고 긴 한숨을 내쉬며 문제지 위에 머리를 박고 엎드렸다. 그러다 벌떡 고개를 쳐들었다. 이따가 저도 가면 안 돼요? 그에 키쿠치하라는 그를 돌아보지도 않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본 채로 대꾸했다. 숙제 있다며. 잘하면 그전까
* 폭력성, 잔인성, 사망 소재 주의 1 ‘트리온체니까 걱정하지 마’ 같은 말을 해주었으면 좋았겠지만 먹혀들지도 않을 거짓말이거니와 거짓말에 익숙하거나 능숙한 사람도 아니었기에 그에게 그런 기대는 걸 수 없었다. 앞서 그를 움직이게 한 행동 원리는 타당했으니 베일 아웃이 동작하지 않아 그 자리 그대로 전투체가 해제된 자신 외엔 그의 동기가 될 자가 주변에
아즈마 하루아키는 보더 내 전투원 포지션 중 스나이퍼, 저격수란 포지션을 최초로 정립한 사람이었지만, 달리 말하자면 그 역시 처음부터 포지션이 스나이퍼는 아니었다는 뜻과 같았다. 새로운 포지션의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은 달리 말해 여타 다른 포지션에서는 메꾸지 못할 한계를 느꼈다는 뜻이니, 포지션 전반에 관한 폭넓은 이해와 분석은 그를 최초의 스나이퍼로 만듦
호월을 사용하는 어태커 이코마 타츠히토가 사용하는 옵션 트리거 선공은 다른 호월 사용자들이 트리거 홀더에 장착한 선공과 다른 점이 없었으나, 사용자가 이코마 타츠히토라는 이유로 이코마 선공이란 이름이 따로 붙어 있었다. 이 이코마 선공의 사정거리는 최대 40m로 일반적인 선공보다 거의 세 배 가까이 공격 범위가 넓었고, 절삭력 역시 무시 못 할 정도라 에스
하토하라 미라이가 미카도시로 돌아왔다. 자의로 귀환한 것은 아니었다. 네이버후드에서 신병을 구속당한 그는 원정선에 실려 미카도시로 연결되는 게이트를 넘었고, 오늘에 이를 때까지 보더 본부 바깥으로는 한 발짝도 내디디지 못했다. 따라서 그는 미카도시로 돌아왔으나 진정으로 돌아왔다고 보기 어려웠으며, 그러나 그것도 오늘로 마지막이라는 말을 그 뒤에 덧붙일 수
* 팬아트입니다. 트리온체는 충격을 받지 않는다. 손상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감도를 0으로 설정하지는 않지만, 무통에 가까울 만큼 고통도 거의 느끼지 않는다. 트리온으로 구성된 신체엔 혈액이 없어 그나마 나은 ‘꼴’을 하기는 하지만, 트리거 사용자 곧 전투원들은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설령 머리가 베어나가도 무던하게 움직이도록 훈련받고 또 그럴 수 있는 자들
이해할 수 없고 그리하여 감당할 수도 없는 폭력을 마주했을 때, 혹자는 자신에게 책임을 돌려 폭력의 이유를 만들어내고는 했다.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이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낸 건 자신이다. 그러므로 상황을 주도한 자신에게 주도권이 있다……. 이는 자기방어의 일종으로 이를 통해 혹자는 정말로 ‘이유 하나 없이’ 저질러진 무자비하고 무도한 폭력에서 철저
* 팬아트입니다. 눈을 가리우는 날개는 그의 머리털과 같이 까만색이었다. 날개는 까마귀의 날갯죽지를 똑 떼어와 머리 뿌리에 붙여놓은 것만 같았고 그 속에서 간신히, 완전히 가려지지 않은 까만 동공의 눈은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날개 같은 건 실은 모두 환상이었기 때문이다. 눈앞의 그는 날개만 뺀다면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람과 같았다. 체내 트리
결국 아침까지 잠을 설치고 말았다. 꿈자리가 사납기가 여간하지 않았다는 말로는 간밤의 꿈을 다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표현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기에, 쿠마가이 유코는 자신의 걱정을 구겨진 이불과 함께 침대에 덜어둔 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방에서 나왔다. 이러든 저러든 식사는 해야 하고 학교는 가야 했다. 유코, 얼굴이 왜 그래. 잠
B급 상위 아즈마 부대의 대장 아즈마 하루아키와 부대원 오쿠데라, 코아라이와의 관계는 사실상 사제 관계에 가까웠으며, 오쿠데라와 코아라이는 방위 임무나 랭크전 같이 보더와 관련된 일이 아니어도, 일상생활에서도 아즈마를 믿고 따를 수 있는 어른, 스승과 같이 여기어 존경하고 본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아즈마도 아직은 20대 중반에 불과했다. 대학에 다닌다
“죄송해요. 거짓말이에요.” “거짓말이에요.” “거짓말이에요.” “거짓말.” 거짓말에 진가를 따져서 무엇하겠냐마는 카라스마의 거짓말은 진상을 시인하는 타이밍에 진가를 두고 있었다. 아직 의심이 걷히지 않은 상태에서의 이른 고백은 ‘역시나 그렇지’할 뿐 흡족할 만한 반응이 뒤따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늦장을 부리면 이 자리를 나비 날갯짓으로 벗어난 거짓말이
가구나 생활용품은 그대로 남아 있으나 사람만이 사라진 시가지―경계 구역은 당연하다면 당연할 만큼 괴담의 온상지가 되었는데, 이에 얽힌 괴담은 아무래도 현실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곳이 범죄의 온상지가 되지 않은 까닭은 사람만 없을 뿐 ‘사람이 아닌 것’을 감시하기 위해 배치된 무수한 폐쇄회로 카메라와 보더 대원의 주기적인 순찰, 그리고 이곳으로 출몰 지역을
보더의 제식 트리거 중 스나이퍼 트리거는 유탄 방지를 비롯하여 여러 안전 처리가 되어 있어 트리온체가 아닌 맨몸으로 탄환을 맞게 되더라도 기절하는 데 그치도록 되어 있으나, 어디까지나 보더의 제식 트리거의 이야기일 뿐 그렇지 않은 트리거에도 이와 같은 ‘상냥함’을 기대할 순 없었다. 알고는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 제3차 대침공은 미카도시에 제1차
아즈마 하루아키는 제아무리 분노하여도 홧김에라도 손을 드는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내려뜨린 손이 주먹을 쥐고 그 주먹에 다시 힘이 들어가더라도 손을 올리는 일만은 결코 없었고, 그러한 까닭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아즈마는 무기를 다룰 줄 아는 자였다. 그는 자신이 분노에 차 벌일 수 있는 행동의 범위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넓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므로
보더에 스나이퍼라는 포지션을 정립한 최초의 스나이퍼 아즈마 하루아키는 최초로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외면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바로 최초가 유일이 되지 않도록, 그 다음이 있도록 대원들을 가르쳐 스나이퍼를 양성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아즈마가 직접 스나이퍼가 되길 희망하는 대원들을 가르쳐 기술을 전수했지만, 보더에 스나이퍼용 제식 트리거가 보급된 후일엔
* 전편 랭크전에 새로운 규칙 하나가 추가되었다. 상대 팀 대원이 반경 60m 안에 존재하여 자발적 베일 아웃이 불가한 상황에서 베일 아웃을 목적으로 스스로 트리온체를 파괴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칙으로, 이를 어길 경우 큰 점수가 감점되어 해당 부대는 사실상 랭크전에서 패배하게 되었다. 소급 적용은 하지 않기로 하였기에 이미 지나간 랭크전에서의 행위는 별
* 소재 주의 (자살) B급 정규 부대 간의 랭크전 또한 많은 관심을 끌어모으기는 하지만, A급 정예 부대 간 이뤄지는 랭크전은 쏟아지는 관심부터가 B급 랭크전과는 궤를 달리하는 편이었다. 높은 주목도 속에서 진행된 A급 랭크전 3라운드, 야간 경기가 종료된 직후, 마지막까지 생존한 타치카와 부대에 생존점 2점이 추가되었지만 최종 점수에선 아즈마 부대가
예고된 침공을 앞에 두고 긴장하지 않을 이는 드물 것이다. 입대한 지 석달만에 ‘진짜 전장’에 서게 된 그는 심호흡을 몇 번이나 한 뒤 트리거를 쥔 손에 괜스레 힘을 더했다. 북쪽 방어를 맡은 그의 트리거는 장검의 형태를 한 트리거로, 순간적으로 날을 길게 늘여 약 15m 밖의 적에게도 타격을 입히는 기능이 옵션으로 추가된 제식 트리거였다. 따라서 그는 검
아즈마 하루아키는 아즈마 부대의 대장이며 전투원이기도 하나, 후임 양성을 위해 맡은 부대인 만큼 사실상 멘토로서 부대원들을 지도하고 기술을 전수했다. 여기서 기술이라 함은 언뜻 듣기엔 공격 기술을 말하는 듯하지만, 오쿠데라와 코아라이는 호월을 사용하는 어태커였고 그들과 달리 스나이퍼 포지션인 아즈마가 말하는 기술은 ‘저격’이 아닌 ‘전략’이었다. 세상 많은
* 사망 소재 주의 한때 A급 1위 부대를 이끌었던 아즈마 하루아키의 두 번째 ‘아즈마 부대’가 해산되었을 때, 아즈마를 제 부대로 영입 또는 세 번째 ‘아즈마 부대’의 대원으로 합류하고 싶어 하는 이들의 수는 적지 않았지만 당연하게도 그들 모두가 ‘아즈마 부대’에 속할 수는 없었다. 아즈마가 과연 세 번째 아즈마 부대를 만들 것인지는 오롯이 아즈마의 의
잊어버린 게 있다. 그 사실만은 분명하건만 무엇을 잊어버렸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매사에 항상 조바심이 드는 까닭이다. 기억해 내야 한다는 생각은 거의 강박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그를 압박하는 것은 실상 아무것도 없다. 자신은 대체 무엇을 잊어버린 것일까?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 몇 해 전 이 도시에 큰 난리가 있었던 것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트리온체는 보통의 인간 신체보다 훨씬 더 강한 근력, 지구력 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구성, 조정되며 통증의 정도 역시 조절할 수 있어 그 자체로 전투에 임하기 좋은 또 하나의 ‘무기’였다. 물론 호월이나 스콜피온같이 근접 무기 형태의 공격 트리거를 사용하는 것이 트리온체를 활용한 격투보다 훨씬 더 강력한 공격을 이어 나갈 수 있기에 이러한 신체로 육탄전을
* 팬아트입니다. 아즈마 하루아키의 아이고, 이거 어쩌지? 비가 좀처럼 안 그치네.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면 두 시 오 분 후였다. 보더 소속 전투원이자 미카도 시립대학 대학원생 아즈마 하루아키는 분주한 그의 하루에서도 일정에 늦는 일이 좀처럼 없었지만, 그런 그가 조금이라도 지각하는 날이 있다면 비오는 날일 가능성이 다른 날보다 조금은 더 높았다.
사람을 쏘지 못하는 스나이퍼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일까? 그러나 아즈마 하루아키는 하토하라 미라이에게 단 한 번도 그렇게 말한 적이 없었다. 스나이퍼는 하토하라가 전투원으로서 맡을 수 있는 단 하나 남은 포지션이었다. 멀리서, 제 손에 직접적으로 전해지고 연결되는 감촉, 감각 없이 적을 공격할 수 있는 포지션은 슈터, 건너, 스나이퍼인데 그중 가장 원
보더의 제식 트리거는 최대 8개의 트리거를 장착할 수 있도록 구성된 트리거 홀더라는 케이스 안에 결합하여 있으며, 정규 대원 이상의 트리거 안에는 여기에 추가로 베일 아웃 기능이 기본으로 내장되어 있었다. 트리거 사용자의 육체는 트리온체로 전환된 사이 트리거 홀더 안에 압축되어 보관되는데, 베일 아웃이란 이렇게 보관된 본래 육체를 지정된 장소로 긴급 사출하
보더의 제식 트리거 중 스나이퍼 트리거는 유탄 방지를 비롯하여 여러 안전 처리가 되어 있어, 설령 트리온체가 아닌 본체의 육신을 저격하여 맞히는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충격과 고통에 기절하는 데 그치도록 안전을 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스나이퍼라는 포지션 특성상 교전 시 적과의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어, 상대가 트리온체인지 확인이 불가할 때를 대비한
사람이사람을함부로정죄하는것은옳지아니하나그자는분명한악한이었다.이사실은누구도부정하지못하리라.그것이사실이기때문에.사람이사람을함부로단죄하는것은아니처 무수히 많은 기계 눈이 그들이 보지 못하는 곳을 단 한 군데도 남겨두지 않으려 할 만큼 사방에 매달려 깜박일지라도 사각은 언제나 존재했다. 어디에든 존재했다. 무릇 범죄란 이를 의도적으로 노린 자에 의해 저질러지곤
* 팬아트입니다. 트리온체는 트리온으로 이루어진 신체이며 트리거를 해제하면 트리온체도 함께 분해되어 사라지는 것이 기본이다. 그것은 트리온체로 이뤄진 모든 신체 일부에 해당하며 본체 곧 트리온 공급 기관과 물리적으로 절단되어 분리되었을지라도 분해되는 시간에 차이는 조금 있을지언정 소멸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보더는 트리온 반응을 조사하여 보더제
* 연성 교환했던 글입니다. 코나미 키리에의 리타이어는 이르다고 표현할 수 없었다. 그는 보더 어태커 순위 3위라는 최상위 순위에 걸맞게 최전방에서 네이버들과 맞섰고, 노멀 트리거 사용자나 트리온 병사가 상대였다면 손톱만큼도 다치지 않을 실력자였으나, 아무리 그라도 블랙 트리거가 상대라면 흔히 표현되듯 그 ‘기믹’을 알기 전까진 고전을 면치 못할 수밖에
어느 전설에는 비익조라는 새가 있다고 한다. 눈이 하나, 날개가 하나라 반드시 짝을 이뤄야만 날 수 있는 새라고들 한다. 전설 속 새라고는 하나 새는 새인 고로, 이 새도 나는 법을 익히기 전에는, 솜털만 보송보송난 채로 부모새가 지켜주는 둥지에서 먹여주는 먹이만 받아먹으며 살 때는 창공을 향한 갈망을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 번 짝
니노미야 씨. 잠들면 안 돼요. 진실 게임 해요. 정말 몰랐나요? 베일 아웃 범위에서 벗어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오퍼레이터 히야미와의 트리온 통신이 방해받는다고 느낀 순간 예상한 궤도를 꺾어 가며 날아온 트리온 구체는 시야 밖에서부터 니노미야의 트리온체를 꿰뚫어 버렸다. 보더의 제식화 된 탄환과 비교하면 마치 하운드나 바이퍼같은 움직임이었다. 풀 어택
복수를 꿈꾸지 않고도 잠들 수 있는 자는 행복하나니! 오늘도 불면하는 자는 지극히 불행하다. 더할 나위 없이 불행하다. 유령처럼 저를 쫓아다니는 그것의 정체를 그는 알고 있나니, 그것은 그 자신의 기억이다.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눈에는 선한 기억이다. 보이지 않으려거든 존재조차 하지 말 것이지, 그리 곱씹던 나날은 그대로 그의 머릿속 작은 해마를 거쳐 기억으
* 팬아트입니다. 이누카이 스미하루의 생일은 5월 1일이다. 이상 기후가 더는 이상하지 않은 현시대라고는 하나 그래도 오월이 눈이 나릴 달은 아니었다. 아니, 또 모른다, 지금 여기에 말이 되지 않는 것이 어디 그뿐일까. 이누카이는 자신의 트리온체를 갱신했던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갱신‘해야’ 했던 날이었으니 선택이 아닌 의무, 그보다는 강제된
* 팬아트입니다. 그들이 왕좌지재(王佐之才)의 재능을 가졌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보좌로 그칠 재능이 아니었다. 실로 그들은 스스로 왕이 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 왕좌까지 단 한 끗만을 남겨두었던 그들이라면 스스로 알고 있을 터, 자신을 아는 것이야말로 지재의 기본이나 그럼에도 지금의 그들은 스스로 버금이 되길 택하여 그들이 왕
오래전 구번에 제도의 관리가 홀로 찾아온 적 있었다. 자신을 궐에서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아온 서관이라 소개한 그는 구번의 아이들을 거둔 그들의 스승에게 데려갈 아이를 추천해달라 말했다. 그 아이는 천거되어 조정의 관직을 맡아볼 것이고 나아가 대신이 되리니 스승은 오래 고려하지 않고 한 아이의 이름을 말했다. 유카를 데려가시오. 그러자 서관이 묻기를, 그 아
죽이려거든 목을 베어 단번에 확실하게 죽였어야지, 그렇게 하지 않아, 또는 그렇게 하지 못하여 기회를 흘려보냈으니 그에 따른 후환을 감당해야 할 때였다. 시국의 재상 테루야 후미카가 예견한 대로 구국 조정에는 무사 귀환한 재상과 함께 피바람이 불었으니 숙청된 대신과 그 가신과 일가의 수를 합하면 어언 ―라, 유배되는 이들의 행렬이 끝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나라 이름 경은 境 자를 썼지만, 警이기도 하였고 무엇보다 세상의 京이기도 하였다. 근계에서 넘어오는 해괴한 존재 곧 근계민이라고 부르는 괴이들이 온 사방에서 민중들을 잡아먹고 납치하여 저들 세계로 끌고 갈 때 지금의 천자가 그의 수족들을 거느리고 나타나 괴이들을 처단하고 경계 밖으로 내쫓아 평화를 이룩하니, 이윽고 그가 세운 나라가 곧 경이 되었고 그는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생사는 알 수 없다는 첩보를 전해 받았다. 세필로 적어 내린 세밀한 정황 보고는 읽자마자 외운 뒤 초에 태웠다. 곧 재가 되었다. 시(柿)국으로 들이는 모든 정보가 반드시 재상을 거쳐야지만 왕에게 전달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재상에게 먼저 들어온 정보라면 그의 재량으로 취사선택하여 왕에게 보고할 수 있었다. 그리하도록 위임받은 권력이
부모를 같이 둔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니 친동기간도 아니었으며 피 한 방울 섞이지 아니하였으니 일가친척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한때나마 같은 집에서 산 적이 있고 그때 들은 정이 있어 남들 앞에 저희를 설명할 때의 관계를 오누이로 설정했을 뿐. 그렇게 말하면 또 정 없는 소리 한다며 타박받을지 모르나, 그들 사이가 좋았다고는 또 한마디도 한 적 없음이다. 원
니노미야 마사타카가 이끄는 니노미야 부대가 B급으로 강등된 후 처음 개시된 B급 랭크전, 그중 하위 부대 랭크전에 참가한 부대 사이에선 곡소리도 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A급 4위라는, B급 하위 부대 측면에서 보면 까마득히 높은 순위를 갖고 있는 부대가 하루아침에 B급으로 강등된 것도 놀라운 소식이었지만, 최하위 순위부터 다시 시작하는 그들과 곧
생각할 시간이 있다면 없는 것보다는 당연히 그게 낫다. 그러나 매사에 그런 여유를 가지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미즈카미 사토시는 주어진 시간 안에 결정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기는 데 이골이 났다고 표현할 만큼 이에 익숙하고 숙달된 사람이었고, 달리 말하면 그가 작정했을 때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극히 짧아 타인이 그
풀 가드를 했음에도 박살 난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탄환에 난사 당한 온몸은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렸음을 말할 필요는 없다. 22m, 선공의 사정거리보다 7m는 더 긴 거리를 눈으로 재는 이는 그만큼 그 비거리에 익숙해진 눈을 갖고 손으로 그를 다루는 데 능숙해진 자뿐이다. 그러나 이를 아는 때는 보는 순간의 뒤에 오고 보는 순간 이전에 이미 트리온체는
트리온체를 사용하여 전투하는 전투원에게 트리온체가 파괴된 직후만큼 취약한 순간은 없기에 전투원의 생존율은 이 순간을 어떻게 보완하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 베일 아웃은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훌륭한 성과를 뽐내었는데, 그만큼 잡아먹는 트리온 소모량이 많지만 그걸 감수할 만큼의 가치가 그 기술에는 있었다. 베일 아웃이 보더의 독자적인 기술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어느
하토하라 미라이에게 미래는 없었다. 보더에서는. 중요 규율 위반 용의자인 그는 트리거를 민간인에게 유출하고 그들과 함께 게이트 건너편으로 밀항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이는 기억 봉인 장치를 적용하게 되는 최고 수위의 위반 행위로, 하토하라 미라이는 그 행방이 밝혀지고 신변이 보더에 의해 확보되는 순간 징계를 피할 수 없음이 자명했다. 실상 보더에서 내릴
* 팬아트입니다. 언젠가 바라본 밤하늘엔 별들이 무수히 반짝이고 있었다. 실은 언제인지도 그는 명확히 기억하고 있으나 회상에서조차 언급하기 꺼린 탓에 그날의 밤하늘은 언젠가라는 막연한 시점으로 지칭되곤 하였다. 그러나 기록을 조금만 찾아보면 정확한 날짜를 찾을 수 있는, A급 랭크전이 야간 경기까지 모두 종료된 날 밤. 감상에 빠져도 좋은 날이었긴 하나
승부를 결정하는 건 전력, 전술, 그리고 운. 그에 들지 못한 진심은 꺾이지 않는 심지가 되어줄지언정 나머지 셋을 거스를 만한 힘은 갖지 못했다. 물론 기합을 넣는 것이 안 넣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러나 기합으로 어떻게든 되는 건 실력이 상당히 엇비슷할 때뿐이기에 기합으로 승리했다고 승부를 해석하기보다는, 이미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 팬아트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심장 옆에 존재하는 트리온 기관은 이를 명백하게 증명하는 신체 장기 중 하나로, 이 비가시기관에서 생성되는 트리온은 때때로 인간의 인지를 아득히 뛰어넘는 힘을 발휘하여 이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기적처럼 이뤄내곤 하였다. ‘뜻대로 이루어지리다. 네 뜻이 무엇이든.’ 이같이 사람 눈에 보이
차라리 아무것도 보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는 의외로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앞날을 볼 줄 안다고 해서 뜻대로 최고의 미래를 쟁취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애써서 겨우 최고에서 버금, 또는 세 번째쯤 되는 미래를 손에 넣는 게 보통이려나. 최악으로 흘러가지 않은 것으로 감지덕지하라는 것처럼 눈꺼풀 안쪽에 무수히 떠오른 채널이 수시로 그 영상을
제2차 대규모 침공 당시 라빗에게 포획되어 큐브 형태로 압축되어 버린 대원 중에는 B급 스와 부대의 부대장이자 건너인 스와 코타로가 포함되어 있었다. 큐브 압축 기술은 트리거 홀더 안에 본래 육신을 압축하여 보관하는 기술의 연장선이었고, 엔지니어들의 노력을 통해 이들은 모두 안전히, 본래의 육신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니, 그대로 게이트를 타고 넘어간 라빗으로
A급 3위, 카자마 부대 어태커 키쿠치하라 시로의 사이드 이펙트는 강화 청각이었다. 소리에서 재질, 중량, 상태 등 여러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그는 일상에서부터 자각 없이 능력을 사용해 왔고, 덕분에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소리라면, 처음 접하는 소리가 아닌 이상 그것이 무엇인지 거의 정확하게 정체를 알아낼 수도 있게 되었다. 또한 처음 접하는 소리일지라
* 전편 트리거란 트리온체 상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다. 다만 트리온체 생성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고, 트리온체로 전환하여 본래 육체보다 강화된 능력을 갖췄을 때여야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많았다. 쉽사리 호흡이 차지 않아 어지간한 질주로는 가쁘지 않은 숨이라던가, 오퍼레이터의 보조가 있다고 하지만 아득히 먼 곳에서 당긴 방아쇠로 정확히 저격
* 팬아트입니다. 돌발 임무를 마쳤을 때였다. 그날따라 그들이 소탕한 네이버 병기는 단단하기도 하거니와 유독 기동성이 높은 병기였고, 한참을 술래잡기하듯 요리조리 포위망을 빠져나가는 병기들과 씨름하고 나자 모두 녹초가 되어 땅바닥에 드러눕고 말았다. 가뜩이나 야간 방위라 달밤에 펼친 달리기 경주의 끝이었다. 남은 것은 본부로 돌아가 보고를 마치는 일뿐.
* 전편 1 대학에 진학하면 보더는 그만둘까 해. 그 말을 꺼낸 날은 공교롭게도 4월 1일, 만우절이었으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밝히지 않은 그의 진로를 밝힌 날, 아무도 그에게 ‘만우절 거짓말이지?’ 또는 ‘거짓말쟁이 브로콜리’ 따위로 그를 놀리듯 부르며 야유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속한 부대의 오퍼레이터 호소이 마오리는 그 말에 슈터를 새로 영입해야
신생 부대 마츠노 부대의 대장 마츠노는 랭크전 다음 라운드를 앞두고 들떠 있었다. 이번 랭크전은 그의 부대가 처음으로 참여하는 랭크전이었고, 랭크전이 처음인 건 모든 부대원도 마찬가지였다. 즉, C급 훈련생 동기들이 모여 B급으로 나란히 승급한 뒤, 개인으로서도 부대로서도 처음으로 랭크전에 도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첫 라운드에선 믿기기 힘들
“누구한테 말하는 거예요?” 어딜 보는 거예요? ……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제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이란 미즈카미에게 더없이 익숙했기에 새삼 낯설게 여기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수를 읽는다는 건, 수싸움이 기본인 스포츠를 한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경기가 시작한 이래 판에서 단 한 번도 꿈쩍하지도 하지 않은 말을 두고 싸움을 벌이는
선공은 “선공”이 되었다. 모두가 모두를 곧 서로를 경계할 때 선공은 소리 없이 날아들어 앞서 타인의 목을 베어낸 자의 발목을 잘라내었고, 그것으로 그들의 난전이 재시작되었음을 모든 이 앞에서 명징하게 선포했다. 그 선언자, 선공을 가한 자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이를 악물었는데, 그것은 마치 조금 전 상황에―그러니까 동료의 목이 베어진 상황에 분노한 것처럼
장기를 그만두고 앞으로는 무얼 할까 고민하는 중에 ‘재능이 있다’는 권유에 다시 한번 넘어간 것은 무어라 설명하면 좋을까. 외계인을 대적하는 방위부대로 스카우트 된 그, 미즈카미 사토시는 그 덕에 다시금 생긴 ‘소속’이 한동안 허했던 마음의 빈자리를 채워주었음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작정을 했다. 부대를 이룰 만큼은 모인 동향 사람들 덕에 연고도 없는 타
블랙 트리거에서 소리가 난다는 괴담이 쿠가 유마에게 닿았을 때 마침 쿠가는 진 유이치가 준 쌀과자를 입에 우물거리고 있었다. 또한, 설마 싶지만 설마 그게 사실이냐는 질문에 입속의 과자를 꿀꺽 삼켜 목구멍 뒤로 넘긴 뒤 대답하는 그에게서도 ‘지금 감히 블랙 트리거를 우롱하는 것이냐’ 같은 태도 따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른 블랙 트리거 소유자들이 그러했듯
* 사망 소재 주의 A급 3위, 카자마 부대의 부대장 카자마 소야의 형 카자마 신은 오 년여 전 일어난 전투에서 사망했다. ‘구 보더’ 소속 열아홉 명 중 사망한 열 명 중 하나였다는 뜻이다. 치열한 전투 끝에 발생한 사망자 중에는 블랙 트리거를 남기고 사망한 자도 몇 있었으나 카자마 신은 이에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유해는 모래로 변해 흩어지지
단순히 유품이라 부르기엔 지나치게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실질적인 유지가 깃든 그것은 곧 그 자신이라 불러도 상관이 없을 정도였지만, 그러기엔 그것과 더는 ‘소통’할 수 없었다. 소통의 단절은 죽음의 특징 중 하나이다. 그 어떤 변환도, 변화도 죽음을 극복하여 그것을 없던 것으론 할 수 없었다. 아니, 그 자체가 죽음을 가공한 것이기에, 생전의 유지대로
* 사망 소재 주의 그런 소문이 돌았다. 블랙 트리거에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염원처럼 강하게 깃들어 혼자서 소리를 낼 때가 있다고. 숫제 귀신 들린 물건 취급이었으나 원체 이 트리온이란 게 한계가 없다시피 할 만큼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물질인지라 불가능하지도 않으리란 추측이 소문 뒤에 따라붙었다. 그들은 이미 트리온을 통해 의지를 전달하거나 목소리에
집을 베도 된다는 뜻이지 않냐고, 이코마 타츠히토 외 다른 사람이 그리 말한다면 그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야유를 들었겠지만, 이코마에게는 ‘할 수 있는’ 행동이었기에 그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말이 되었다. 엄폐물이 더는 필요하지 않다면 시야를 가리는 방해물을 내버려둘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그것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베일 아웃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베일 아웃의 기준점은 원정선이었고, 트리온체의 이동 능력을 고려했을 때 반경 3km는 그다지 넓은 범위라고 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원정선을 매시간 보더들의 위치에 맞춰 이동시킬 수도 없는 노릇. 베일 아웃의 유용성과 실전성은 몹시 뛰어나나 그렇다고 맹신해도 좋은 기술은 되지 못한다는 것 또한
원정 선발 시험 7번대 대장으로 선출된 스와 코타로는 제비뽑기 운과 감에 따라 대원들을 선발하였으며, 그중 제비뽑기 ‘운’에 대해서는 온전히 자신의 ‘운’에 따라 결정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트리온으로 특별 제작된 제비는 사전 앙케트를 반영하기 위해 준비되었을 것이므로, 이는 마작에서 ‘동(東)’을 가리기 위해 굴리는 두 번의 주사위가 실은 조작되어 있었
베일 아웃은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트리온체가 행동 불능 상태에 빠졌을 때 본부로 자동 귀환하도록 하는 이 기술은 보더 전투원의 생존율을 크게 끌어올렸고, 동시에 돌이킬 수 없이 처박는 모순적인 부작용을 낳았다. 더는 ‘생존’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안 그들은 사실상 목숨이 2개라는 점을 이용하여 ‘목숨(트리온체)’을 내버리는 무모하고 대범한 전술을
너무나 쉽게 잘려 나가는 팔다리에 헛구역질을 한 훈련생도 한둘은 있을 법하다. 트리온체에 설정된 통각이야 미미하지만, 눈을 통해 곧장 들어오는 시각 정보는 지나치게 자극적이라 생각보다 많은 훈련생 ‘지망생’이 이 과정에서 탈락하고는 했다. 시험을 경험한 것 자체가 트라우마가 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든 보더 훈련생은 해당 과정을 수료하고 통과하여
판 전체를 속이는 도박에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갔다. 그대로 허공으로 뻗어 나가 흩어지는 듯했던 사냥개가 몸을 틀어 자신의 앞으로 돌진한 순간 니노미야는 자신의 패배를 직감했다. 정면에서 사선으로 쏟아지듯 내리꽂힌 하운드는 니노미야의 트리온체를 너절하게 찢어발기고 바닥까지 일부 부순 뒤에야 힘을 잃었고, 추스릴 틈도 없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가속까지 더
* 팬아트입니다. * 전편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팔랑팔랑 춤추다 인간으로 깨어난 장자는 자신이 과연 나비가 된 꿈을 꾸었던 것인지 아니면 지금의 자신이 바로 나비가 꾸는 꿈인 것인지 어느 것이 사실인지 모르겠다는 설화를 남겼다. 꿈을 꾼다면 그런 꿈을 꾸어야 후세에 남길 이야기가 생길진대 나비의 꿈을 꾸는 그는 여전히 인간이었고, 그 대신 나비가 된 꿈
그들은 그것에 그럴싸한 이름을 붙이지도 않았다. 영어로 일컬으면 인상이 조금 흐려지긴 하나, 사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도 없어 불평하기도 뭣했다. 부작용이 그럼 부작용이지 달리 무어겠는가. 무엇이 되어야 하겠는가. 딱히 없었다. 부작용은 부작용일 뿐이고, 신체 평가 기타란에는 신체에 내재한 트리온 양이 그렇지 않은 이보다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을 만큼 ‘많다
기술에도 역사가 있다. 특히나 서로 경쟁하는 이들의 손에 기술이 쥐어졌을 때 기술의 역사는 ‘꼬리잡기’라는 놀이로 그 발단과 발전 단계가 비유될 수 있었다. 따라잡히면 다시 따라잡기 위해서, 꼬리를 물려 뒤처지면 다시 앞서가는 꼬리를 물기 위해서, 발전하는 기술의 양태를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역사를 알아야 했고 그 동력을 알아야 했다. 무엇이 그 기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