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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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미 맛보았기 때문에 좀 더 알기 쉬웠던 건지도 모르겠어. 마지막 순간 생이 부유하는 느낌 말야. 그대로 끝인 줄만 알았기에 이질감을 크게 느끼는지도. 신기해, 조금. 레이. 미안. 나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이해하지 못하겠어. 그러나 그 말에 나스는 고개를 저을 뿐 쿠마가이를 나무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래야 한다는 듯이 입가
도저히 이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년 만에 본부 건물 내부로 침투하는 데 성공한 적인 만큼 아무리 베어내고 또 찔러대도 아무렇지 않게 막아내는 단단한 장갑과 요리조리 모두 피해내는 민첩성을 당해낼 수 없었다. B급 중위 부대 마츠노 부대의 대장 마츠노는 이제 막 첫 번째 랭크전을 끝낸 B급 정규 요원으로서 풋내기 루키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 배드 엔딩 루트에서 이어지는 키쿠치하라 이야기 그는 사람에게서 수많은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중에 어떤 소리는 들리지 않는 게 건강에 이롭지만, 어떤 소리는 반드시 들려야만 한다. 귀에 닿아야만 한다. 주기적으로,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그래, 숨……. 숨소리도 이에 해당하였다. 들숨과 날숨이 반복되는 숨소리, 바람
오늘도 결국 이 자리에. 이코마는 자신을 가로막은 미즈카미를 바라보며 섰다. 미즈카미. 어디 가세요. 진에게. 시기가 이때쯤 오면 미즈카미는 숨기는 게 없어졌다. 끝이 다가오기 때문일까? 그래서 풀어진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절대 그렇게 흘러가도록 두지 않겠다고 말하면서도 이것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진. 너의 눈에도 보일 거야. 아라시야마는 그렇게 말하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 말대로 진의 눈에도 보이고 있었다. 아라시야마와, 그와 겹쳐 무너지는, 그보다는 부서지는 세상이 보이고 있었고, 조금 후 미래의 그들에게 그 미래가 닥쳐올 것이, 진의 눈, 시야, 또 다른 ‘스크린’, 다시 말해 미래시의 화면에 선명하게 상연되고 있었다. 이 세상은 참 따
마더 트리거를 가지고 망명했다. 게이트 너머로. 몰락한 왕가―다시 말해 그들의 가족은 그들의 별을 유지했던 마더 트리거를 어린 공주와 아직 갓난아기에 불과한 왕자에게 계승한 후 두 사람을 도주시켰다. 마더 트리거와 동화하여 아리스테라를 유지하던 ‘신’은 어떻게 되었는지, 마더 트리거를 잃은 아리스테라의 대지와 창공은 어떻게 되었는지, 돌아볼 새도 없게 게이
그는 오래전 ――에서 미덴 병사와 혼자 맞닥뜨린 적이 있다고 말한다. 맞닥뜨린 순간 사생결단을 각오하고 트리거를 손에 쥔 그였지만, 그가 그러든 말든 편법으로 만든 티가 난 낚싯대와 낚시찌에나 관심을 쏟던 미덴의 병사는 이틀 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던 그에게 그가 가진 식량―방금 잡은 물고기를 선뜻 나눠줄 만큼 선량했다고 한다. 해가 저물었을 땐
미덴에는 신이 없다면서요. 부럽네요. 우리는 신이 있어야 살 수 있는데. 그러며 툴툴거리는 후배에게, 그러는 너는 툴툴거리는 것 말고 한 게 무엇이냐고 면박을 주려다 생각을 고쳐먹고 그만두었다. 자신은 지금 괜한 데 성질을 부리며 화를, 정확히는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고 있고, 후배 놈 또한 가벼운 입과는 다르게 손은 착실히 움직이는 편이기도 했다. 몇백 년
밤의 바다를 부유하는 나라의 별―별의 나라와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중심부에는 트리거가 핵으로 존재했으니, 마더 트리거 또는 퀸 트리거라 불리는 트리거와 동화하여 수백 년 동안 별을 돌보며 살아가는 인간 제물을 그들은 ‘신’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렇게 바쳐진 제물이 진정 ‘신’으로서 전능한 권력을 누렸다고는 보기 어렵다. 제물로 ‘내던져진다’라는 표현에서
* ‘우리 모두를 죽여도’는 마비노기 영웅전 에피소드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우리 모두를 죽여도 그들은 오지 않아.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그렇다고 장담하는 진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제 앞에 선 자를 올려다보았다. 미래를 볼 수 있게 된 이래 암약은 그의 장기였고 그 눈에 보이는 미래에도 그들이 오는 모습은 아직 비치지 않았으니 실로 이번에도 그의 계획은 잘
* 이어지는 이야기 “오키는 착각하고 있어요.” 미즈카미는 그것이 착각이라고 말한다.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왜곡해서 해석하고 있죠, 많은 것을요.” 그는 예시를 하나 들고자 한다. 오키가 자신의 행동과 의도를 오해석한 사례를. 입을 여는 그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다. 그러나 신경질적이지는 않고, 착잡한 것에 가깝다. “먼저 저는 그 애를
추천은 보증이었다. 추천인이 자신의 면을 걸고 하는 보증이었고, 무언가 어떠한 일에 임할 때 먼저 보증을 받고 싶은 것은 당연한 사람의 심리였다. 니노미야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소리다. 그는 자신이 새로이 영입할 부대원을 추천 받고 싶었고 추천인의 이름으로 그를 보증 받길 원했다. 아즈마 부대가 해체된 이후에, 아즈마의 이름으로. 미와와 함께하기로 한 츠키미
* 이어지지 않는, 과거편 임무는 실패했고 너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너는 돌아왔다. 우리는 여기서 ‘돌아오다’란 동사와 ‘너’란 명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록 임무는 실패했으나 유능하기론 버금을 허용치 않는 너의 부대는 너를 두고 올 생각 따위 전혀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너’는 돌아왔고, 다만 거기에 너의 의지는 없었다. 너의 의지 없는
* 지인이 풀어주신 이야기를 빌려 썼습니다 왜 바다였을까? 왜 바다를 입에 담았을까, 너는? 내가 죽으면 바다에 뿌려 줘. 너는 그 말이 그대로 너의 유언이 될 줄 알았을까? 물론, 그 말은 그 자체로 훌륭한 유언이긴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게 그대로 마지막 말이 될 줄 너는 알았을까? 몰랐겠지. 사이드 이펙트를 가진 이는 아라시야마 쥰이 아니
* 이어지지 않는, 과거편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던 건 너잖아, 스와.’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스와 씨, 그게…….” “그게 뭐?” “그게…….” 왜 다들 나한테 사실을 알려주길 망설였을까? “카자마 씨가…….” “카자마? 걔가 왜?” “그만…….” 그만……. 왜 마지막 말은 내 입에서 나오지 못했는지. 그만. 그만해. 그만 말해. 말하지 마
* 이어지는 이야기 웃지는 말지. 웃지나 말지. 총성이 울리매 잠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당신을 보았으니 나는 명령권을 다시 당신에게 반납했고, 회수한 당신은 나를 보며 명령했다. 웃지 않고. 쏘라고. 저격은 나의 역할이었으므로 나는 명령에 따라 방아쇠를 당겼다. 꿈에서는. 그럴 수 있었다. 이 전쟁이 끝나면 무엇을 할 거냐고 물었을 땐 휴학생 주제에 복
* 이어지는 이야기 「오키!」 쏴. 총성이 울리매 잠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당신을 보았으니 꿈의 이름은 악몽이 되었다. 악몽에서 나는 명령권을 다시 당신에게 반납하고, 회수한 당신은 나를 보며 명령한다. 웃지 않고. 쏘라고. 저격은 나의 역할이었으므로 나는 명령에 따라 방아쇠를 당긴다. 꿈에서조차도 그날처럼. 그날도 나는 명령에 따랐지만 기록에 남은 명
* 팬아트입니다. https://x.com/epppll00/status/1850872849218838863 무엇이 되었든 블랙 트리거와의 전투가 문제가 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아봤자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것. 그것은 상황이기도 했고, 과거이기도 했고, 망가진 트리온 기관이기도 했고, 다시 말해 모든 것이기도 했지만, 마지막 투
「오키?」 「그 실력을 우리를 구해주기 위해서 쓸 수는 없었어?」 ‘아니―. 그쪽은 저격을 경계 당할 것 같아서.’ 트리온 무전을 통해 호소이가 물었다. ‘방금 그게 무슨 소리야?’ 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호소이는 5인 부대의 오퍼레이터였다. 인원이 늘수록 오퍼레이터에게 가해지는 부하가 커지는 트리온 연결 시스
* 이어지지 않는, 배드 엔딩 루트 “걔는 성격도 나쁘고 짜증 나는 녀석이었지만.” “너처럼 나를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거든.” “나를 죽이려고 하진 않았어.” 스피커를 망가뜨리는 데 성공한 것 같았다. 조금 더 자연스러운 발성을 의도하고 음원을 의식해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의 목울대가 있을 부근에 설치되었던 듯한 스피커는 망가진 것인지 더는
* 이어지지 않음 이 전쟁이 끝나면 고백할 거다. 하마터면 방금 문 돗대를 그냥 땅바닥에 뱉어낼 뻔하였다. 간신히 붙잡아서 망정이지 다시 입에 물 생각은 새까맣게, 또는 새하얗게 잊힌 채 카자마를 돌아본 기억이 났다. 너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냐? 안다. 그럼 쓸데없는 복선 깔지 마, 망할 자식아. 이것도 복선으로 취급되나? 좋아하는
* 사망 소재 키자키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미카도시를 떠난 지 2년이 다 되어가고 있을 때였다. 미카도시에만 영향력을 한정했던 보더가 전국적으로 ‘필요’해지게 된 지도 그쯤 되었으니, 솔직히 말해 좋은 변화, 현상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더는 네이버의 게이트를 미카도시 경계 구역으로만 한정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엔 미카도시뿐만이 아니라 전국 전역에
네이버를 처음 갈랐을 때 깨달은 것은 이것들에게선 피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쉬움을 느꼈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미 훈련 단계에서, 보더의 기술로 구현된 가상체인 건 알지만 실제와도 그리 다르지 않을―다르지 않게 설정되었을―굳기를 가졌을 흰 몸체에서 피 한 방울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그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쓰러져, 행동을 멈추는 그
시노다가 제자를 들였다고 했다. 그리하여 저보다 한 살 위인 소년과 마주했을 때 진 유이치는 곧 그들이 훈련장도 아닌 맨바닥에서, 트리거도 아닌 맨손으로, 트리온체도 아닌 본래 육신으로 치고받고 싸우는 미래를 볼 수 있었고, 적잖게 당황했다. 아니, 왜? 갑자기? 그 사이를 감히 짐작할 수 없어 더욱더 샅샅이 미래를 뒤지는데, 야, 하고 부름이 들려와 눈을
어린 날의 기억 중 하나이다. 그가 어쩌다 제자를 둘 생각을 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었다. 스승을 잃은 아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중에 마음을 동하게 하는 무언가라도 발견했는지. 어쩌면 제가 죽은 뒤로 저 아이―진―처럼 제 죽음을 애도할 대상을 찾은 걸 수도 있었다. 후계를 남겨야겠다는 생각. 후세를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 어떤 생각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었
“스나이퍼?” ‘건너가 아니고?’ 건너의 총기와는 다르다는 말은 막상 확인한 트리거의 긴 총신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사정거리는? 파괴력은? 훨씬 길지. 한번 맞아볼래? 그러며 자세를 취해 보이길래, 응! 고개를 끄덕인 뒤 바닥을 박차고 도약했다. 그걸 또 직접 맞아봐야 성에 찬다는 인간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그보다 정확히는 질린다는 얼굴
* 팬아트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어떤 소설에는 양탄자에 가계도를 그린 어느 마법사의 가계가 등장한다.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으며 혈통에 집착했던 이 고풍스러운 가문은 젊은 이단자들이 가문에 나타날 때면 가계도에 새긴 그들의 이름을 담뱃불 지져 끄듯 지져 없애는 것으로 의절을 선언했는데, 이는 그들과 저희가 절연하였음을 세상에 공고히 공고하고 파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 아닐까? 지는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뭐가 됐든 이기는 것이 지는 것보다 훨씬 기분 좋으니까.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이건 제법 많을 것이다. 다치는 것도, 남을 다치게 하는 것도, 기분 나빠할 사람은 엄청 기분 나빠할 테니까. 싫어할 사람은 정말 정말 싫어하겠지. 설령 다치지 않는다고 해도, 그 행위 자체에 거
아즈마 하루아키는 동 대학에서 학부,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과정을 하는 이들이면 으레 그러하듯이 반올림해서 10년이 아니라 진짜로 빈틈없이 채운 10년을 같은 건물에서 보내는 사람―그것을 우리는 대학원생이라고 불렀다―중 한 명이었는데, 절대로 다행은 아니겠으나 그럼에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오래전 학부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던 건물이 현재는 구교사
이상한 미래가 섞여들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아니, 정말로. 설명하기 미묘한데, 어째서 그런 결말로 치닫는지 알 수 없는 그런 미래라고 할까. 아, 이 말이 지금 굉장히 불친절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되는지 설명하기가 워낙 어려우니 말이다. 저에게도 다소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보이는 한 모든 맥락을 보아 이야기의 전개를 따라가 보
“타치카와 씨가 블랙 트리거가 되는 건 싫어.” 옥상 바닥에 벌렁 등을 대고 누워 있던 진이 그렇게 말했을 때, 그를 돌아본 타치카와도 덩달아 바닥에 함께 누워버렸다. 그렇게 누워 버리면 코트에 온갖 먼지가 다 달라붙을 텐데.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고 말지만, 그러는 진 역시 제 재킷이나 머리칼 사이로 모래가 들어가는 것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누워 버린 터였
상대 저격수의 움직임을 봉인하고 저지하는 역할은 아군의 저격수가 맡았다. 타겟을 저격하는 순간 저격수의 위치 또한 노출되기에 그들은 서로를 경계하며 숨을 죽였다. 그들은 실로 모든 생리 작용이 거세된 육체 안에 거하고 있었으므로 가능한 한 오래, 바란다면 숨조차 죽인 채로 대치 상태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물론 영원히 그럴 수는 없었다. 기대한 사람도 없
* 사망 소재 코나미 키리에는 그해 대학생이 되었다. 보더에 관한 많은 것을 잊은 뒤였다. 수도권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그가 고향인 미카도시로 돌아왔을 때는 미카도시를 떠날 적 짧게 잘랐던 머리카락이 다시 길어져 머리끈 하나로 묶을 수 있게 되었을 때였다. 대학 입시를 1지망 대학 합격이란 경사스러운 소식과 함께 마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상경했던 코
* 사망 소재 해산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대장을 맡아야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A급을 유지할 순 없으리라고 했다. 사실, 해산의 의미 역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대장은 없었고, 저 외엔 오퍼레이터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유이가는 보더를 그만두었다. 유이가가 그만두지 않는다고 해서 떨어지지 않을 순위나 급이 아니었고, 유이가의 결정 역시 이해하지
12시 자정을 넘기기 무섭게 메시지를 보내오는 이들, 대부분 친구인 이들 덕택에 생일을 스스로 잊을 염려는 덜었다. 그는 붙임성 없는 성격임을 스스로 모르지도 않으며 이를 바꿀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이기는 하나, 그것이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는 뜻과는 같지 않기에 짧게 고맙다는 답신을 메시지 뒤에 꼬리처럼 달아매어 놓는 것으로 예를 다하기로 한다. 그를 아는
“생일 축하해요.” 가르치는 아이에게서 케이크를 받았다. 분명 그 주변 어른들에게 떠밀려 대표로 케이크를 들게 되었을 아이는 긴장했는지 팔이 빳빳하게 굳어 있었지만 다행히 떨어뜨릴 것을 염려할 만큼 팔을 떨진 않았다. 그래도 아이를 위해 얼른 케이크를 받아 들었다. 고마워. 인사하면 어색하게 미소 짓는 아이다. 자주 해본 이벤트는 아닌 모양이었다. 생각해
가족은 사진첩 속으로 오래된 영화는 서랍 속으로 블랙커피는 찻잔에서 빙글빙글 넘칠 만큼의 파랑은 바라지 않으므로 넘치지 않을 만큼만 휘저은 뒤 스푼을 빼낸다 예전엔 모두가 비디오테이프로 영화를 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재생하기 전에 먼저 처음으로 되감겨 있는지 확인해야 했던 테이프를 기억한다 대여점의 일이었다 그렇지만 문 닫기 전 저렴하게 값을 치러 가져
* 사망 소재 모순되진 않은 결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싸움이 끝나고 내린 결론이었다. 은퇴하자고. 예비역처럼 남아있던 지난날은 여기서 끝내자고. 인수인계는 사와무라가 모두 맡아주어서 다행이었다. 시노다 대는 여기서 끝. 이다음부터는 사와무라 대가 될 것이다. 오래전 구 보더 시절에 잃고 만 재원들로 인해 이 빠진 징검다리처럼 놓인 세대도 이젠 다음
그전까지는 기회 한 번 주어지지 않더니, 그전까지의 시간이 우습게도 이듬해부턴 원정 부대로 무리 없이 선발된 지라, 그동안은 혹 당신이 이를 막고 있었나 하는 착각이 설핏 들 뻔도 하였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내게 개입할 당신은 아니기에 그저 우연의 일치임을 알아야 했다. 실은 진짜 이유도 알고 있었기에. 결원이 발생했기 때문이란 걸 모를 만큼 어리석지는 않
* 사망 소재 아무도 그가 그 자리에서 그런 선택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제 끝이라고, 더는 싸우지 못할 거라고. 그럴 거라면 차라리. 그럴 거라면 차라리……. 사와무라와 짧은 대화를 마치고 복도로 나왔다. 현재 시노다 본부장의 업무는 모두 사와무라가 맡아 처리하고 있었다.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도, 사와무라는 자
아마 그는 나보다 연상일 것이다. 마주 앉아 수를 주고받으며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 우리는 수를 주고받았나? 말을 주고받지는 않고? 이야기를 주고받은 기억은 났다. 우리는 모두 이야기를 좋아했으므로 서로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흥미롭게 즐길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속속들이 잘 알기에 더욱 그랬다. 서로가 누구냐면, 나였다. 나는 나와 기억을 주고
카자마 신은 호월을 사용했을 것이다. 당연하다. 스콜피온은 그보다 후일에 진 유이치가 타치카와 케이와의 승부에서 호월로는 도저히 이기지 못하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개발을 추진하여 만들어 낸 트리거이므로, 그전까지는 호월 외에 다른 어태커용 트리거가 있진 않았으므로 카자마 신은 호월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무게가 거의 없는 스콜피온과 달리 한 손으로 들자면
타치카와가 죽었다. 안타깝게 되었다. ‘아직 안 죽었거든!?’ 하고 곧장 반박이 날아와야 평소겠으나 평소와 다르게 축 늘어져 겨우겨우 발을 떼는 그를 보며 니노미야는 예의상 붙였던 마지막 문장을 수정했다. 앞 문장이 아닌 마지막 문장을. 왜냐하면 죽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솔직히 말해서 그리 안타깝진 않았기 때문이다. 옆에서 나란히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카
끝 보이지 않게 검은 총구는 긴 원통형의 총신이 지필 불을 뿜어낼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가까이 들이밀어진 탓에 초점을 잃은 눈은 어지러이 굴러가다 결국 질끈 감기고 말았는데, 그 가운데 자리한 뇌만이 생각을 거듭했더랬다. 니노미야는 조금 전 제가 본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무얼까, 그가 본 것은? 총구, 총신, 그리고 그걸 쥔 손, 팔을
이해할 수 없는 자들이란 점에서 그들이 가진 공통된 면모를 하나 더 추가할 순 있겠다. 타치카와와 진을 보고 하는 소리였다. 일찍이 진에 관해서는 근계민이 받을 수 있는, 또는 받아야 하는 처우에 관한 견해가 서로 극을 내세울 만큼 달랐던바, 지금에 이르러선 진에게도 어느 정도 자신과 유사한 과거가 있음을 알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것이 그의 의견을 미와가 그
타치카와 케이는 일찍이 공부 머리가 없다는 평가를 자타에서 받고 자란 소년, 자라선 청년이었으나 싸움 머리 하나만큼은 비상하다는 사실 또한 모두에게서 인정받는 청년이기도 했다. 다행히 보더는 싸움 머리뿐인 타치카와를 적절히 다뤄낼 자신이 있는 조직이었고, 없는 공부 머리를 만들기보다는 있는 싸움 머리를 좀 더 원활히 돌리는 법을 그에게 일러주고, 또 스스로
* 팬아트?입니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25년 동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정말로?)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모두가 스와를 바라보았을 때 퍼뜩 든 생각이었다. 스와의 대가는 아즈마였다. 즉, 마주 보는 자리에 아즈마가 앉아 있었고, 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광활하지는 않
그때는 그것이 진정 옳았으리다. 다만 그것이 옳은 날은 그때뿐이었으니 계속 옳고자 하였으면 그때에 계속 머무는 것이 좋았으리다. 옳은 날은 가고 옳지 아니한 날이 오니 올올이 매듭지었던 그간의 시간 정도야 끝을 잡아당기기만 하면 뜨개옷 풀리듯 풀려나갔고, 여기에는 힘조차 필요하지 않았더랬다. 당기기만 하면 되었다. 당기기만 하면, 끌려오는 지난날. 당기기만
* 팬아트입니다. 막지 않은 것이 아니다. 막지 못한 것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트리온을 영리하게 쏘아 올렸다. 가장 먼저 그 눈, 오른쪽 눈을 꿰뚫음으로써 거리를 재는 능력을 봉인했고, 아이는 사내의 가장 강력한 공격이 사정거리로 좌우됨을 알았다. 무릇 많은 무기가 그러하겠지만 총기―그중에서도 리볼버라 하는 것은 목표물에 적중하지 않는 한 상대에게 어떠한
레이를 본뜬 안드로이드를 만들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유코는 이 일이 언젠가 일어날 줄 알았던 사람인 양 담담히 제 앞의 화자를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입을 열지도 않았다. 그를 비난하거나 화를 내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유코에게는 그를 비난하거나 화를 낼 자격이 없었고, 그 역시 유코에게서 비난받거나 화풀이 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 팬아트입니다. 살아 돌아가지 못하면 구조대원으로서 실격. 아버지로부터 주입 받은 명제를 거스를 생각은 없으나 말처럼 쉽지 않은 것 또한 사실임을, 그러했으니 몇 번이고 강조하셨던 것이겠으나 이렇게 직접 알고 싶지는 않았던 것을 직접 알게 된 것에 관해서, 별도리가 없다고 생각한 키자키다. 존경은 하고 있지만 똑같이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 왔던 아버지
* 지인의 썰을 풀어썼습니다. * 폭력성 주의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바투 쥔 돌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린 후 내리쳤다. 한 손으로, 단 한 번이면 되었다. 있는 힘껏 휘두르면 한 번으로 충분한 힘이 그에게 있었고, 그는 제힘을 쓰는 데 망설이지 않았으니 망설임 없는 결단력 덕에 그는 살았음이다. 그러지 못했다면 그는 죽었으리다. 머리에서 피 흘리며
원정선 내에서의 다툼은 돌아가 징계 위원회에 즉각 회부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크고 작은 많은 사건들의 실상이 그렇듯이 이를 목격한 목격자 전부가 함구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마무를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거기에 이를 명령할 수 있는 자가 포함되어 있다면 은폐는 더더욱 쉬워져서 그날도 현장에 있는 모든 이는 이 일이 결국 이 땅에서 묻힐 것을 알았고,
* 팬아트입니다. 해를 넘긴 첫 달의 두 번째 월요일은 전년도 4월부터 당해 3월까지 만 20세를 맞이하는 사람들을 축하하는 날로 정해져 있었고, 조금 건방진 소리일 수도 있으나 나라에서 공휴일로 지정하면서까지 기념하는 날인 만큼 그가 아무런 축하 없이 날을 넘기리라 생각하지는 않은 니노미야였다. 그렇다고 어떤 축하를 받을지는 생각해본 적 없는 청년이었으
* 팬아트입니다. https://x.com/epppll00/status/1820514811966586996 타치카와 케이는 A급 1위 타치카와 부대의 대장으로 노말 어태커 최강으로 일컬어지는 시노다를 스승으로 사사하고 어태커 및 종합 순위 1위를 유지하는 명실상부 보더 내 강자 중 한 명이었으나, 이러한 그라도 단 한 번의 패배도 용납하지 않는 자라고는
* 팬아트입니다. 제아무리 허황하고 말이 안 된들 허점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꿈이기에 니노미야 마사타카는 제가 꿈을 꾸는 줄 알지 못한 채 꿈속에서 헤매는 꿈을 꾸었다. 해바라기밭 한가운데에 서 있는 꿈을. 현실의 니노미야는 그 키가 결코 작은 편이 아니었지만, 꿈속의 키를 훌쩍 넘는 해바라기가 헤아릴 수 없이 피어난 밭 가운데에선 도
* 팬아트입니다. 눈을 가리우는 날개는 그의 머리털과 같이 까만색이었다. 날개는 까마귀의 날갯죽지를 똑 떼어와 머리 뿌리에 붙여놓은 것만 같았고 그 속에서 간신히, 완전히 가려지지 않은 까만 동공의 눈은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날개 같은 건 실은 모두 환상이었기 때문이다. 눈앞의 그는 날개만 뺀다면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람과 같았다. 체내 트리
잊어버린 게 있다. 그 사실만은 분명하건만 무엇을 잊어버렸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매사에 항상 조바심이 드는 까닭이다. 기억해 내야 한다는 생각은 거의 강박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그를 압박하는 것은 실상 아무것도 없다. 자신은 대체 무엇을 잊어버린 것일까?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 몇 해 전 이 도시에 큰 난리가 있었던 것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 팬아트입니다. 아즈마 하루아키의 아이고, 이거 어쩌지? 비가 좀처럼 안 그치네.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면 두 시 오 분 후였다. 보더 소속 전투원이자 미카도 시립대학 대학원생 아즈마 하루아키는 분주한 그의 하루에서도 일정에 늦는 일이 좀처럼 없었지만, 그런 그가 조금이라도 지각하는 날이 있다면 비오는 날일 가능성이 다른 날보다 조금은 더 높았다.
* 팬아트입니다. 이누카이 스미하루의 생일은 5월 1일이다. 이상 기후가 더는 이상하지 않은 현시대라고는 하나 그래도 오월이 눈이 나릴 달은 아니었다. 아니, 또 모른다, 지금 여기에 말이 되지 않는 것이 어디 그뿐일까. 이누카이는 자신의 트리온체를 갱신했던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갱신‘해야’ 했던 날이었으니 선택이 아닌 의무, 그보다는 강제된
* 팬아트입니다. 그들이 왕좌지재(王佐之才)의 재능을 가졌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보좌로 그칠 재능이 아니었다. 실로 그들은 스스로 왕이 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 왕좌까지 단 한 끗만을 남겨두었던 그들이라면 스스로 알고 있을 터, 자신을 아는 것이야말로 지재의 기본이나 그럼에도 지금의 그들은 스스로 버금이 되길 택하여 그들이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