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훌라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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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사회적 동물이라 이르는 데에는 여러 가지 사유가 있으나 개중 하나를 꼽자면 바로 동족과의 감정적 유대를 감각하고 꾸준히 증명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알게 된 지 고작 십여 분밖에 되지 않은 상대에게도 그럴 수 있고, 본인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상대에게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우습지 않은가. 한 개인을 구성하는
너는 일만 중요하지. 내가 너한테 중요하긴 해? 너는… 연애하기에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나만 너 사랑하는 것 같아서 힘드네. 입관 후 경험한 연애가 하나같이 비슷한 내용의 말로 끝을 맞았다는 건 아무래도 저 자신에게 귀책사유가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는 게 편했다. 어쩌면 아주 말도 안 되는 이유는 아닐지도 몰랐고. 물론 이에 대해 할
삼척의 특수 임무 이후 희연에겐 첫걸음에 디딘 땅을 문질러 흙을 확인하는 버릇이 들었다. 꼭 운동선수의 루틴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기실 이는 희연에겐 증명의 수단이었다. 신발 굽 아래에서 뭉그러지는 흙의 존재를 감각하며, 자신의 이능이 제 거느림 아래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 말이다. 하필이면 같은 동해라는 사실이 마냥 편치만은 않았으나 임무라는 건 취향
사고하는 존재라면 누구든 꿈을 꾼다. 어느 대학 강의에서 교수가 칠판에 정갈히 쓴 문장을, 카림은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그 때가 정확히 천팔백 몇 년도 즈음이었는지, 어느 대학의 어떤 교수였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와중에도 말이다. 그 문장이 유난히 기억에 남은 이유를 꼽으라면 글쎄. 당시엔 신선한 말이었기 때문일까. 칠판에 그 한 문장을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 낯선 타국의 냄새가 밴 공기를 처음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뱉어냈을 때. 괜한 구박을 들으면서도 부득불 챙겨온 필름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순간을 가둘 때. 페리 갑판 아래로 시선을 내려 누런 흙빛의 강물조차 포말은 희게 부서진다는 걸 알았을 때. 평소라면 서지 않았을 긴 대기줄을 따라 종종종 움직여 근방의 명물이라는 간
https://youtu.be/jq22qz7DmlE?si=_UeaBMblaxBsLNkZ (들으시며 읽으면 더 좋…을지도?) 랑해님의 썰을 기반으로 하여 쪼작쪼작 써본 윤슬 청춘 au 로그입니다… 청춘 마싯다 냠냠. 달과 바다와 그늘 上 지금보다 더 어렸을 적, 산군은 아주 드물게 조모의 앙상한 무릎을 베고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곤 했다.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묻지 마. 나 지금 숨 쉬는 것만으로도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아.” “…….” “대답이 부정이라면 그냥 잘 가라고 인사해줘, 핀. 그거면 돼.” “……나는 그 어떤 대답도 되돌려줄 수 없어, 닐. 하지만 네가 죽지 않았으면 해. 죽지 마.” 어떤 다정은 마음을 죽이는 맹독이 된다. 그 다정한 선고가 닐의 마음을 깊이 후벼팠
소실점을 처음 발견한 것은 미술가였다. 그의 이론은 건축가를 만나 더욱 발전되었고, 여러 화가의 손을 거쳐 보급되기 시작했다. 16세기의 화가나 건축가에게 원근법과 소실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소실점을 확인하게 되면 공간의 입체감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닐은 소실점의 정의를 떠올릴 때면 종종 모순을 느끼곤 했다. 평행으로 된 두 선이 멀리 가서
명사 1. 쓰임의 정도나 쓰이는 바. 한이관의 홍보대사 역할을 한다는 것은 사실 제법 민망하고, 때론 귀찮으며 생각보다 다양한 일을 부가적으로 해야 했다. 예를 들자면 티비로 송출되는 공익광고를 찍는다던가 브로셔 또는 홍보물용 촬영을 한다든지, 드물게 인터뷰를 하거나 외부로 강연을 나가는 식이었다. 기실 강연을 하는 일은 극히 드문 편이었는
제야의 타종 행사를 지나 보내고 새해가 밝아오면 한국이능력관리기관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기색으로 부산스러워진다. 아카데미에서 모든 과정을 수료한 학생들이 성인이 됨과 동시에 정식으로 한이관 소속의 요원이 되기 때문이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입관식은 3월 초—대개 2일—에 이뤄지므로, 그전까지 한이관의 여러 부서가 동시에 바빠지곤 했다. 강당
제목은 동명의 노래에서 따왔습니다. kygo, sasha sloan - I'll wait [Don’t your parents know that you live like that in Korea?] “Shut the fuck up idiot, that’s none of my business.” [Huh? What a bastard.] “Yeah, t
경고. 비행 모듈 다운. 비상착륙에 대비하세요. 함체 하단에 다량의 액체가 감지됩니다. 해상 운항 모드를 전개합니다. 아득한 정신과 섬뜩한 고통 사이로 들려오는 익숙한 음성에 멀어지려는 의식을 간신히 현실로 붙들어 맨다. 몸이 들썩이도록 터진 기침을 뱉어내면 복부에서 뜨거운 것이 꿀럭 넘쳐 흘렀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시야는 검었고, 널을 뛰듯 어
*이탤릭체는 영어 대화 날벼락이라는 건 원래부터가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것이다. 대체로 맑게 갠 하늘에서, 일말의 전조도 없이 우르릉 꽝. 거기다 벼락은 인간의 속도로 결코 따라잡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니, 어쨌든 사람이라면 인생에서 최소 한 번쯤은 무력하게 날벼락을 맞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실생활에 적용을 해보자면… 잘 자고 있다 난데없이 고막으로
비온 뒤 땅이 굳는다고 했다. 희연이 그 말을 믿기까진 시간이 꽤 걸렸다. 땅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된 이후에도 한동안은 믿지 않았으니, 삶의 대부분에서 불신해왔던 셈이다. 진짜 땅은 비가 온 뒤 굳어질지 몰라도 사람의 마음은 비가 내린 뒤 그저 진창으로 남아있을 뿐이라고. 줄곧 그렇게 믿었고 생각해왔다. 저 자신이 그랬으니까. 한이관의 정식 요원이
*이탤릭 표기는 영어대화 “한 번 더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태국이능력관리기관 소속 가이드이고, 그냥 지미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저랑 같이 온 요원은 메이라고 합니다. 센티넬이에요. 머무시는 동안은 저희가 동행할 예정입니다.” “예, 파견 기간 동안 잘 부탁합니다.” 운전석에 앉아 뒤를 돌아보며 다시 인사를 건네오는 목소리가 제법 쾌활했다. 조수석에
검은 보스턴백과 함께 택시에 몸을 실은 희연이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도로에 접어들기 시작하는 창밖의 풍경에 시선을 두었다. 하늘은 눈이 시릴만치 파랬고, 군데군데 솜을 찢어둔 것처럼 흩어진 구름이 퍽 운치 있었다. 딱 어딘가로 떠나기에 적절한 날씨라는 소리다. 얼마간 도로를 달리는가 싶던 택시가 신호에 걸려 서서히 멈춰 섰다. 제각각의 목적지를 향해
희게 쌓여 꽁꽁 얼어붙다 종내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눈의 빈자리를, 안온한 온기 좇아 움트는 생명력이 채워나가며 푸릇하게 물들일 무렵이었다. 그 말은 곧 희연이 대학생의 신분을 벗고 요원 훈련생의 신분을 입게 된지 반 년 정도가 지났다는 뜻이다. 그와 더불어 부모님과 연락을 주고받지 않은 기간이기도 했다. 희연은 자신이 센티넬임을 알게 되었던 바
세상을 구성하는 몇 요소들 가운데엔 그 존재가 너무나도 당연하여 새삼스럽게 인식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으레 사람들이 호흡하는 공기가 그러하고, 밤낮을 가르는 빛과 어둠이 그러했으며, 모든 것의 기틀이 되는 땅이 그러했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삶이 땅을 딛고 살아간다. 땅은 곧 흙이고, 흙은 뭇생명들이 태어나고 자라며 종내에 죽음을 맞이하는 가장 긴밀한
스물다섯, 권은 양양을 떠나 강릉으로 옮겨왔다. 저를 내칠 용기는 없어 끌어안고 있으면서 시선이라도 마주칠라치면 흠칫 어깨를 떨거나 갈라진 웃음을 지어 보이는 모친으로부터. 조모를 여읜 것은 중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이었고, 부친은 스물이 되기 전에 한 줌의 재로 화하여 나무 아래에 잠들었다. 그러니 모친이 홀로 저를 견뎌온 시간은 약 오 년. 한 손의 손가
디지님의 로그 [기도 시간]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제목 클릭 시 이동!) 낯선 숲의 곳곳에서는 이곳이 누군가의 영역임을 알리는 체취가 풍겼다. 영역의 주인도 모르게 타 개체의 영역으로 침범하는 것은 때로 죽음을 각오해야 할 정도의 중대한 사안이다.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간간히 눈앞을 희부옇게 만드는 눈폭풍이 숲의 나무
창조주가 세상을 빚을 때 가장 먼저 빚은 것은 무엇이고, 가장 마지막에 빚어낸 것은 무엇일까. 인간들은 흔히 창조주가 저 자신들을 가장 마지막에 빚어냈을 것이라 말하곤 했다. 창조주가 외로워서, 혹은 그를 닮은 피조물을 보고 싶어서 빚어냈다고. 세상의 모든 것 가운데 창조주를 가장 닮은 것이 그들 자신이라고. 인간들의 지저귐은 창조주의 귀에도 닿았다. 무
*유혈 표현 및 고어적인 묘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 쪽으로도, 비인간 쪽으로도 제법 바쁜 나날을 보내고 약간의 여유를 찾은 즈음이었다. 몇 달 간 의도치 않게 방치해둔 해건의 소식이 문득 궁금해 그간 그래왔듯 자연스레 해건의 동태를 파악한 산군은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해건은 이제 완전한 뱀파이어였다. 마지막으로 얼
처음으로 권속을 만들고 알게 된 점이 있다면, 감각의 아주 작은 어느 한 부분이 매 순간 권속의 존재를 감각하고 있다는 거였다. 딱히 대단한 감각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냥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 기묘한 감각으로도 산군은 짐작할 수 있었다. 권속이 많을수록 뱀파이어는 세상에 좀 더 단단히 발을 디딘 듯한 감각을 느끼게 될
사내는 존재했다. 주위의 모든 것이 허물어지고 다시 일어서길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아주 길고도 긴 시간을 살았다. 처음이 어땠던가를 기억하는 것은 이제와 의미도 없고, 인간일 적의 기억은 흐리게 퇴색하고 삭아버려 알아볼 수조차 없는 유물이나 매한가지인. 살아온 해를 꼽아보는 일도 그만둔 지 오래다. 차갑게 식은 심장이 거죽과 골육 안에서 고요히 잠들어있다
*고증...어쩌구는 적당히 흐린 눈으로 봐주시면...(^^) 디지님의 [사제의 정]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역시 기본은 영어, 말풍선 안 이탤릭 표기는 한국어입니다. https://youtu.be/tMrXyjGM-NY?si=dZcEWECfjfuV_DQ_ 수를 셀 수 없는 뭇 관중들의 소란, 팀 크루들의 함성, 레이싱 수트 위로
배경은 대충... 90년대 말 쯤이겠거니 해주십사... 사샤: 알렉산드르의 애칭 알료샤: 알렉세이의 애칭 시료자: 세르게이의 애칭 브라츠바 : 러시안 마피아를 부르는 호칭의 하나.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수준의 규모를 가진 조직을 일컫는다. 겨울의 살레하르트는 사람에게 잔독하리만치 시리다. 호흡 한 가닥마다 기도를 할퀴어내는 싸늘한 냉기, 피부를
隱刪. 수수께끼와 같이 숨은 것을 깎아내어 세상에 드러내라는 뜻을 담은 이름은 기자가 되었다면 대성할 운명이 아닌가 하고, 은산은 시시때때로 생각했다. 은산이라는 이름은 제가 태어나기도 전 조부께서 직접 옥편을 찾아가며 지어준 이름이라 들었다. 그러나 조부의 직업 아닌 직업을 생각하면 집안에서 기자가 나오길 바랐을 것 같지도 않았으므로 은산은 더더욱 미궁
“2박 3일 예약 확인되셨고, 저희 측의 착오로 원래 예정되어 있던 방이 준비가 덜 되어서 룸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해드렸습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아… 감사합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소식에 나는 얼떨떨하게 눈을 깜빡이다 카드키를 받아 챙기곤 짧은 인사를 남긴 뒤 돌아섰다. 처음으로 혼자 해 보는 여행인지라 친구들의 강력한 추천에 힘입어 숙
단편으로 조각조각 끊어져 간신히 남아있는 삶의 가장 앞에 선 기억은 그랬다. 손가락이 가느란 손, 조금은 성급하게 이끄는 힘, 처음 맡아보는 지독한 비린내. 감각으로만 남아 어렴풋한 기억의 조각을 곱씹어보면 그것은 버려지던 날의 기억일 것이다. 아마도 생선을 깔아둔 좌판이 근처에 있었을 테고, 죄를 짓는다는 느낌에 조급했던 건지도 몰랐다. 가느란 손은
귀환은 당당하지 않았다. 적어도, 레나트의 귀환은 그러했다. 마음속에 조그맣게 지펴진 의혹의 불씨가. 일말의 양심이 외쳐대는 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는 소리가. 낙숫물을 맞은 수면처럼 파동을 일으키며 번져나갔다. 5구역의 방벽 그 경계에 존재했던 진실에서는 부패한 시취가 진하게 묻어났다. 단백질이 분해되며 내뿜는 그 지독하고 끔찍한 냄새가 귀환하는 내내
대화를 주고받지 않는 날이 늘었다. 주고받는 대화라 해 봐야 아주 간단하고 일상적인 것 정도가 다였다. 그러나 딱히 서로를 미워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화를 내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사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가 서로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일은 삼가자 말했지만, 카림은 밖으로 나도는 일이 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차오르는 그에 대한
디디가 자취를 감추고 한 달을 조금 넘겼을 때, 카림은 더 참지 못하고 추적에 나섰다. 이정도면 많이 참아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온 햇수가 천 년을 넘어가며 분노의 임계점은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었는데, 모처럼 뚜껑이 열릴 듯 말 듯 아슬아슬했다. 그가 한국에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거리에 선 채 카림은 저를 흘긋거리며 지나는 인간들을 무심한
*[슬픔에 대하여]에서 이어집니다. 목숨을 다할 수 있을 만큼 소중한 존재는 없을 거라고 단언한 이래, 카림은 천 년의 시간을 보냈다. 단언은 확언이 되어갔고 그어놓은 선은 견고한 벽이 되었다. 그사이 카림의 옆자리엔 여섯 명의 부인이 차례로 머물렀다 떠나갔다. 그들은 모두 인간이었고, 사탄의 계약자이거나 그가 악마라는 것을 알고도 스스로가 원해 유희에
모든 사고하는 존재는 감정을 가진다. 감정의 크기는 각각 다를지라도 희노애락에 뿌리를 둔 다양한 갈래의 감정을 갖는다. 물론 드물게 감정을 갖지 못한, 혹은 잃어버린 경우가 있긴 했으나 어쨌든 진리에 가까운 한 문장임은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카림 또한 빗겨가지 못하는 명제였다. 지구를 담은 듯한 눈을 뜨고 세상을 보게 되면서, 카림은 제 안에서 피어
좀비가 뉴욕을 뒤덮은지 이 주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 케일럽은 머물 곳을 두 번 옮겼고, 쉘터 방위군이라는 것이 되었으며, 아무런 능력이 없는 일반인들을 구하기 위해 능력을 사용했다. 케일럽이 가진 인류애의 정도를 놓고 본다면 케일럽은 박애주의자라기 보다 개인주의자에 가까웠으므로 거창한 사명감이나 책임감에 의해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바라는 것
희미하게 짠내를 품은 바닷바람이 살랑이며 불어와 머리칼을 흔들었다. 테이블에 턱을 괴고 난간 너머 펼쳐진 말리부 비치를 바라보는 지루한 눈은 짙은 선글라스에 가려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알렉스의 부탁으로 나온 자리였다. 제 친구의 아는 사람이 인스타그램에서 저를 보고선 딱 한 번만 만날 수 없겠냐 사정에 또 사정을 했단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알
갑작스레 시작되었던 살육의 밤은 시작만큼이나 갑작스레 끝났다. 실 끊어진 인형처럼 움직이기를 멈춘 시체들 사이에서 케일럽은 유일하게 서 있는 존재였다. 시체로 그득한 호텔 로비를 한 바퀴 훑어보았다. 바닥에 흥건한 피, 리셥션 데스크 위를 물들이는 피, 벽에 수놓아진 피. 피. 피. 온 사방이 시체와 피였다. 방금 전까지 뺨에 새롭게 튀었던 피를 닦으려던
언어는 사람이 자신의 뜻과 느낌을 표현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다. 그 외에도 언어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무수히 많았다. 언어는 또한 도구였다. 아이에게 언어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면 어른에게 언어는 자신의 교양과 지식 따위를 드러내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고 볼 수 있었다. 옛부터 과시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언어는 중요하
"그게 문제가 되나요? 마담." 아침부터 무거운 정적만이 티 룸을 감싸고 돌았다. 캘리포니아에서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집안의 가장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티 룸에 모여 앉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늘빛 위로 갈색 얼룩이 진 눈동자가 티 없이 푸른 눈을 마주했다. 흔들리는 마담의 시선이 찻잔 위로 떨어져 내린다. 뒤를 잇는 깊은 한숨에 고운 빛깔의
1. '어리다'는 것은 좋지 않다. 어리다는 것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고, 어리다는 것은 어른이 없으면 안되는 게 많다는 뜻이었다. 케일럽은 그 사실을 다섯 살에 깨달아 가고 있었다. 또래에 비해 생각이 깊다면 깊은 편에 들었다. 케일럽은 많은 것을 따졌다. 이것은 어째서 이렇게 되었고, 왜 저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지. 그것은 왜 그
호흡마다 눅눅하고 차가운 습기가 폐부를 가득 채웠다. 젖은 풀의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바스락거리는 풀잎 흔들리는 소리가 귓가를 쓰다듬는다. 케일럽은 눈을 내리깐 채 고요하게 숨을 내뱉었다. 한 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앉은 채 키가 큰 풀 사이에서 몸을 감추고 있는 중이었다. 제 옆에서는 외조부가 숨을 죽인 채 날카로운 눈으로 풀 너머를 꿰뚫듯 쳐다보고 있
어떠한 일들이 어떠한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마치 한껏 감아두었던 태엽을 놓은 오르골처럼. 뉴욕은 원래 이렇게 무수히 많은 일들이 쉬지 않고 일어나는 곳인가? 뉴욕이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것이 좋지 못한 사건들에도 적용되는 말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다. 케일럽은 신문 상단에 크게 쓰인 <상처받은 코람데오
고래古來에 인간은 꾸준하게, 무언가를 두고 나누는 것을 참 좋아했다. 세상의 것들을 멋대로 나누어 분류하고 묶다가, 그네들 스스로도 다양한 기준으로 분류했다. 사람 간의 계급을 나누고, 특징으로 종을 분류한다. 사람만 해도 개인에게 따라붙는 꼬리표의 개수는 적어도 하나 이상이다. 나누는 잣대의 기준은 다양했다. 성별, 가진 부의 크기, 피부의 색, 타고
예술의 어원은 기술을 의미하던 말이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처음으로 '기술'을 필요에 의한 것과 기분 전환 및 쾌락을 위한 것으로 이분했다. 그렇게 전자가 기술이 되고 후자는 예술이 되었다. 예술은 단순히 미美만을 내포하지 않는다. 희로애락을 포함하여 예술에는 한 손에 꼽을 수 없으리만치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 예술은 언제나 사람들을 향해 많은
1825 아이의 세상은 잔잔했다. 주변에서 어떤 격랑이 몰아쳐도 아이의 세상에 들어오면 그것은 작은 파도가 되었다. 2555 환한 햇살 아래 어느 날 아이는 동생을 밀쳤다. 자신의 공을 동생이 가져간 뒤 흠집이 생겼다는 이유였다. 도련님, 아무리 화가 나도 아직 어리고 약한 동생을 그렇게 밀치면 안 돼요. 유모가 말했다. 무릎이 까진 동생을 보듬는
파리에서의 답장이 이제야 도착했다. 케일럽은 어쩔 수 없이 휴가를 승인한다는 티가 잔뜩 나는 답신을 내려다보고 원래대로 접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자신의 서재로 쓰이게끔 만들어진 방은 아직도 어색했다. 케일럽이 뉴욕에서 한동안 머물겠다 결정한 이후, 저택에는 새롭게 방이 마련되었다. 케일럽은 자신이 처음 묵었던 손님방을 계속 쓰는 것으로도 괜찮다고 생각
파리는 많은 예술가들이 천국으로 여기고 찬양하던 도시였다. 각종 예술이 술과 담배, 낭만 아래 한데 뒤섞여 녹아내리는 그런. 그 가운데에서도 파리에 번성한 재즈는 파리를 천국으로 여기고 건너온 미국의 뮤지션들이 일으킨 파리의 여러 기둥들 중 하나였다. 파리에 있을 때에도 재즈클럽은 동료들과 자주 다녔다.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재즈는 영감을 불러일으키기에
미국의 봄은 낯설다. 케일럽이 가진 봄에 대한 기억은 10살까지의 흐릿한 기억과 지난 미국 순회공연 때 2번 정도 맞이했던 기억뿐이었다. 다 똑같은 봄일 텐데 낯설 것이 뭐냐고 한다면 그도 그렇다 고갤 끄덕이고 말겠지만. 사실 낯선 것은 봄뿐만이 아니었다. 마치 외국에 여행을 나온 듯 조국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이 낯설었다. 자신을 마중 나온 포드에 몸을
*warning: 자살사고, 자해* 눈을 뜬다. 눈을 감는다. 다시, 눈을 뜬다. 숨을 가늘고 길게 내쉰다. 뱉어지는 호흡과 함께 내려앉는 갈빗대가 심장과 폐를 짓누르며 새카만 무저갱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이대로 호흡을 멈추고, 깊게 잠들어 흔적 없이 녹아내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멸망이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멀어진 그날로부터 며칠이 지났는
"바냐? 오늘은 어쩐 일로 나보다 더 자네." 낯선 듯 익숙한 목소리에 이반이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깜빡, 깜빡 느릿하게 깜빡이는 시야에 낯선 천장이 선명히 자리한다. 흠칫 몸을 굳인 이반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바냐, 왜 그래. 안 좋은 꿈이라도 꿨어?" 어깨 위로 사뿐히 와 닿는 온기, 다정한 걱정이 담긴 말. 고개를 옆으로 돌리
한 장소에서 꾸준히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점차로 그 장소에 스며들게 됨을 뜻한다. 그와 더불어 그 장소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의 일부가 되거나 관찰자 또는 방관자, 증인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반은 줄곧 어중간한 위치에 머물러 있었는데, 알렉세이의 소개로 직원들과 얼굴을 익힌 뒤 펍 Holyoke에 반쯤 스며든 채 직원인 듯 아닌듯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라는 것은 사회에서 그가 가진 영향력과 돈, 누릴 수 있는 권리 등을 말하는 지표다. 사회적 지위가 어느 높이에 위치 하냐에 따라 삶의 질이 크게 달라졌다. 사회적 지위는 타 구성원들과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내세울 수 있는 무기이자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패였으나, 그것이 세상의 모든 곳에 통용되는
이반 블라디미로비치 아이스토프는 멸망을 욕망했다. 멸망을 원한다는 것을 처음 인식한 때는 악마 푸르카스를 마주쳤을 때였다. 세상에 켜켜이 쌓인 신의 안배를 증오할 수 있을 것 같다 느꼈다. 그와 더불어 이반은 멸망을 향한 제 원함이 그보다는 오래되었음 또한 깨달았다. 그러나 그것의 정확한 시작은 알 수 없었다. 부모의 죽음을 목격하고 길거리로 도망쳤을
알렉세이의 사무실 책상에 걸터앉은 이반의 탁한 녹안이 소리 없이 굴러 이쪽과 저쪽을 번갈아 보았다. 이반의 앞에는 알렉세이가, 그 맞은편에는 바네사가 앉아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펍에서 마주하는 바네사 라이트우드의 얼굴은 대체로 술기운이 올라 붉거나 술에 취해 베싯거리는 웃음을 머금고 풀어져 있었는데, 카드 덱을 앞에 놓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
오후 다섯 시가 지나야 느지막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일반적이던 알렉세이가 평소와 달리 직원들이 출근하기도 전에 펍 Holyoke의 문을 열었다. 가게의 문을 열었음을 알리는 팻말은 여전히 Close에 머물러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낡은 가죽 수트케이스를 든 다부진 체격의 사내가 아무렇지 않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바 안쪽에서 차갑게 얼어 농도가
악마는 교만을 먹고 자랐다. 혼돈한 존재인 인간의 교만함이 악마의 배를 채웠고, 힘을 키웠다. 사실, ‘자랐다’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었다. 어린 시절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자랐다는 표현 또한 맞지 않았다. 악마는 '자랐다'는 말이 가진 어감을 그리 싫어하지 않았다. 자란다는 것과 강해진다는 것은 그 두 가지를 관통하는 공통적인 의미의 조각이
마약상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을 무작정 죽일 수 있는 인내심이다(물론 반은 우스갯소리다). 특성상 일일이 방문을 할 수도, 광고를 할 수도 없으니 한 장소를 암묵적으로 정해두고 고객들이 찾아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일이었다. 이반은 특별한 일 없이 시간을 죽이는 것에 이골이 날 정도로 익숙해져 있었고, 며칠 전의 기다림 역시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흘러가고
왕이 마음을 잃고 광기를 띄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은 종종 궁금해하곤 했다. 날 때부터 미친 사람이 어디있겠어. 뭔가 계기가 있었겠지. 왕의 광기가 처음 고개를 치켜들었을 때 일부 사람들은 왕을 동정했다. 일국의 정점에 서는 자리가 마냥 가벼운 자리만은 아니니 광기에 휩싸이는 것도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게 그들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6월이 다가올 쯤이면 하얀 밤이 찾아온다. 새벽 두 시에 해가 떠 밤 열한 시가 될 때까지 해가 지지 않는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하지가 되면 지지 않는 밤을 축제로 보낸다. 또한 하지는 이반 쿠팔라Иван Купала가 열리는 때이기도 했다. 쿠팔라는 수확과 열매를 가져다주는 여름 신의 이름임과 동시에 전통 있는 하지 축제였다.
부슬비가 약한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나부끼듯 내리는 밤이었다. 사흘 째 오락가락하는 비에 도로며 건물이며 모든 것들이 축축이 젖어있었다. 바닥에 고인 얕은 물 웅덩이 위로 차의 헤드라이트며 건물 외부의 간판이 발하는 빛이 흔들거리며 떠다닌다. 잠시 그것에 시선을 두었다, 거의 내리지도 않는 비를 피하는 것처럼 건물 외벽의 튀어나온 장식 아래에서 오가는 사
짙푸른 드네프르 강을 앞에 둔 작은 오두막은 대체로 빈 집이었다. 생활감이 없는 냉막함이 작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마른 나무의 냄새와 오래도록 켜켜이 쌓인 먼지의 냄새가 퀴퀴하게 묻어났다. 사냥꾼들이 잠시 바람을 피하고 몸을 쉬기 위해 사냥철에나 종종 쓰곤 한다는 장소였다. 오가는 사람이 없어 야생동물이 오두막 근처를 기웃거리는 일도 잦았다. 어
멸망이 한걸음 더 성큼 다가왔다. 칠월이었다. 이반은 여즉 멸망을 또렷이 실감하지 못했다. 뉴욕은 지난달 몇 가지의 큰 사건들로 말미암은 슬픔에서 겨우 벗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멸망이 도래했음을 외치거나 울부짖는 목소리는 한층 더 힘을 얻고 하늘 높은 줄을 몰랐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볍고 짧아졌다. 더운 날의 연속이었다. 이반은 마치 여행객이나 대
인구 과밀의 도시가 달아오른 정점, 세 시. 길거리를 누비는 자동차며 사람이 뿜어낸 열기가 한낮의 온도와 뒤섞여 빽빽한 건물 사이사이를 쉽게도 달군다. 유월의 뉴욕은 확실히 지난달보다 조금 더 뜨거웠다. 이맘때쯤의 모스크바는 뉴욕보다는 조금 시원했으므로, 이반은 식사를 위해 들른 가게의 창가에 앉아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이른 더위를 느끼는 중이었다.
술은 때때로, 혹은 상습적으로 사람을 바꿔놓고는 한다. 그렇게 될 즈음이면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그것은 보드카 국이라는 오명 아닌 오명―이반은 오명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술을 잘 마시는 것이 흉은 아니지 않은가.―을 가진 국가 출신인 이반이 지겹게 보아 온 광경이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실시간으로 보고 있기
캄캄한 어둠이 내렸어야 하는 밤이었다. 물론 뉴욕이라는 대도시의 밤은 모국의 변두리에 내리는 어둠과 사뭇 달랐지만 어쨌든 밤은 밤이었다. 내리는 눈에 주홍빛으로 물든 밤하늘이 희끄무레하다. 눈은 쉽게도 더러워지는 주제에 쉽게도 빛을 반사했다. 검던 밤하늘의 존재를 지웠다. 허드슨강과 맞닿은 리버사이드 공원의 돌담에 걸터앉은 이의 하얀 얼굴이 찬바람에 붉게
죽음에게 물으면 생이 답한다. 생이 움직이면 죽음이 따른다.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죽음을 피해 살아남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깔려있는 본능이다. 비단 인간 뿐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살고자 하는 본능을 가졌다. 살고자 몸부림을 쳐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모두가 살기 위한 야만스러움을 드러내는 가운데 얌전을 떨어서는 목숨줄을 이어붙이고 있을
차가운 공기에 벌써 싸늘히 식은 열쇠를 주머니에 집어넣은 이반이 겉옷의 후드를 뒤집어썼다. 모스크바에 비하면 따뜻하다 싶은 겨울의 냉기에도 입김은 희게 공기 중으로 스며든다. 습기를 머금은 이끼색 녹안이 흐릿한 하늘을 눈에 담는다. 일기예보대로라면 오후에 진눈깨비가 조금 내릴 터였다. 스노우 스톰이 불어 뉴욕의 이곳저곳을 하얗게 만들던 게 작년 이맘쯤의
아무래도 펍에 새로운 단골이 하나 더 늘어난 것 같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단골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조만간 이반의 머릿속 단골 리스트에 올라갈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뜻이다. 단골 리스트에 올라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밤새 펍에서 자리를 지키다 나가는 정도는 아니었으나 맥주를 음료수처럼 마셔대는 사람이라면 전자의 단골들과는
열린 창을 통해 고스란히 떠밀려 오는 바깥의 소란에 침대 위 이불 더미가 꿈틀, 움직임을 보인다. 세상의 종말이 가져오는 각종 불행한 것들에 대해 토로하는 목소리에는 광기가 어려있다 느껴질 만큼 맹목적이고 절박한 데가 있었다. 할렘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니 미친놈처럼 종말을 떠들어대는 치들이 이 골목으로 넘어오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