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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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주제 : 편지 (엽서) 연리지 :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나무처럼 자라는 나무들 스티븐은 마크와 한 몸을 공유하게 되면서 이전의 관행을 버리기로 했다. 숨어다니는 또 다른 인격이 그들과 어울릴 생각이 없기에 여전히 발목에 가죽 수갑을 차고, 침대 아래에 모래를 뿌리고, 현관문에 테이프를 붙이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으나 평범
전력 주제 : 금붕어 눈을 뜨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늑함을 유지하는 이부자리와 켜켜이 쌓인 책들, 언제 변할지 몰라 관심을 주기에 적절한 영국의 날씨, 대도시에서의 삶이라는 흔한 표현. 그런데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외롭다……." 듣는 이도 없는데 나직하게 중얼거린 스티븐은 어릴 적부터 배를 차갑게 해선 안 된다던 어머니의 말을 따라 여
밀워키에서 보낸 추수감사절은 꽤 즐거웠다. 아끼는 헌팅캡을 쓰고, 잘 보관한 가죽장갑을 끼고, 블레이저 위에 코트를 걸치고, 목도리를 두르고, 눈을 게슴츠레 뜨고,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전날 자란 수염을 깎지 않으면 충분히 청년으로 보였다. 목요일, 혹시나 도망칠 경우를 대비해 근처의 길을 익히기 위해 무리를 지어 돌아다녔다. 금요일, 콘슈와 그
약국에서 사무보조일을 마친 토요일. 제이크는 서둘러서 돌아와 집 정리를 했다. 만일을 위해서, 라며 후견인이 주었던 총기류는 물론 누가 봐도 수상한 사람으로 보일 만한 것들은 다 치웠다. 그러고는 스티븐을 위해 여분의 담요도 꺼내놓았다. 약속했던 여섯 시가 다 되어가자 제이크는 과연 스티븐이 마크를 잘 달래고 올지 궁금했다. 어쩌면 마크가 영악하게도
스티븐은 순진하고 착한 녀석이다. 치안에 대해 오르내리는 지역에서 낯선 자신과 길거리에 쪼그려 앉아 개미 구경을 했을 때처럼 기본적으로 사람을 의심하는 법을 모른다. 그 역할은 마크가 다 하고 있으니 그럴 것이다. 스티븐의 태도가 워낙 무던하기에 제이크는 그를 스티비라는 유치한 애칭으로 부를 만큼 놀리고 귀여워하며 형제처럼 대했다. 마크에게는 그렇게
Bruised Fruit 멍든 과일 알 카포네가 한때 시카고를 주름잡았다는 것은 시카고 사람이면 모를 수가 없더랬다. 대부분의 시민들에겐 흔적을 지워야 할 역사였으나 '일부' 시민들에겐 자랑스러운 사실이 되기도 했다. 시카고는 겉으로 보기엔 번쩍거리며 미시간 호수를 곁에 두고 있는 아름다운 대도시였지만 여느 도시가 다 그렇듯 빛이 들지 않는 곳도
스티븐은 어머니의 집에서 떨어진 동네에서 혼자 방을 얻어 살고 있었다. 아침을 먹은 후 그의 자취방에서 입을 옷이나 양말 등을 가지고 왔다. 검은색 계열의 옷가지가 많은 건 마크의 취향과 다를 게 없어 보였으나, 요상한 패턴의 셔츠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의 패션 감각이 영 형편없다는 스티븐의 주장에 납득한다. 마크 자신도 옷 입는 감각이 없어서 옷장을
어머니의 집으로 가는 길에 스티븐은 오히려 아버지가 없는 편이 낫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상이지. 빨리 꺼져줘서 오히려 고마운데." "나도 아빠를 봐도 기쁘다는 생각은 없었거든. 마크 너는 안 그래. 오랜만에 보니까 좋다." 마크는 싱긋 웃으며 피곤할 스티븐의 손에서 가방을 들어 주었다. 삼십 년 만에 만났다고 스티븐의 입은 멈출 줄을
이상하게도 초조함이 떠오른다.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까지 별생각이 없던 마크는 시카고에서 런던으로 이어진 여덟 시간의 비행을 마친 뒤, 인파와 함께 우르르 몰려오는 긴장감에 정신을 다잡으려고 자세를 똑바로 했다. 아마 시차와 낯선 환경에 심장이 놀라서 날뛰는 걸지도 모른다. 두근거리는 가슴속을 진정시키려고 코로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내뱉는다. 이방인을
익숙한 곳에 도착하자 다이고는 곧장 미네의 병실로 향했다. 데려다주기보다는 쌓인 앙금을 풀고 싶었다. 둘은 조심하세요, 알고 있어, 와 같은 말밖에 하지 않았다. 보좌하는 부하들을 물리고서 미네의 걱정과 함께 지팡이에 의지해 천천히 실내로 걸어 들어가면, 늘 처리해야 할 서류가 쌓여 있는 다이고의 병실과 달리 아무것도 없어서 적막하게 느껴졌다. 그 누
부하의 손을 통해 미네에게 편지를 보낸 지 몇 주가 지나고 달이 바뀌었다. 그동안 미네는 빠르게 회복하여 글씨도 가지런해졌다. 반면에 다이고는 업무 스트레스 때문인지, 앉아있던 시간이 길어서인지 상처를 회복하는 속도가 느렸다. 그래도 이제 아픈 곳은 없었고 다리에도 어느 정도 힘이 생겨 많이 걸을 때만 지팡이를 쓸 수준이 되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끝났다. 다이고는 그렇게 생각하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지금 막 병실의 베드 테이블 위에 정신없이 펼쳐놓은 서류들에 서명을 마친 그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입으로 긴 한숨을 내쉰다. 안도감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더 남은 불안이 없는지 걱정도 되는 기분이다. 어둠에 갇혔다가 또 다른 어둠 속에서 정신을 차린 다이고는 자신을 덮친 많은 것들을 용서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저녁, 퇴근하고 돌아오면 다이고가 없었다. 심장이 내려앉은 듯한 느낌을 받은 미네는 아무렇게나 구두를 벗어던지고 성인 남성이 숨을 곳도 없는 좁은 집을 뒤졌다. 말도 없이 사라지는 건 비겁했다. 다시 끈끈한 인연 없이 혼자가 되는 건 싫었다. 불안함에 그의 신분도 잊고 경찰에 신고할까, 하며 밖으로 달려 나간 미네는 터덜터덜 돌아
Family Tree 가계도 남들이 보기엔 저명한 브랜드의 것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평범하고 인기 없는 디자인의 손목시계를 보면 밤 열한 시가 가까웠다. 인기척이라곤 없는 거리를 지나 자신의 키만큼 기다랗고 넓은 검은 우산을 쓰고 어둑어둑한 주택가로 들어가면 풍경은 항상 같다. 며칠째 들고 가지 않는 폐가구, 고양이들이 사냥 후 옆구리가 터진
다섯 시간이 지나고 저녁이 되자 문신사는 작업을 그만두었다. 하루에 대여섯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문신사가 온몸의 관절에서 소리가 날 만큼 스트레칭을 하고 일어나서 랩을 가져왔다. 시뻘겋게 물든 미네의 등에는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기린 그림이 진한 잉크로 가득 차 있었다. 어딜 가는 건지, 구름 속에서 안개에 엉켜 날아오르는 의기양양한 기린에
Devotion 헌신 다이고가 미네와 의를 맺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때였다. 바깥 세계에서는 경력이 길지만 아무리 오래 있어도 승진의 기회가 적은 이쪽 세계에서 신입이나 다름없는 미네에게 이것저것 알려 주고 싶은 것이 많았다. 배움이 빠르고 명석한 녀석이니 금방 익힐 것으로 사료되었고, 다이고의 의형제라는 이름에 걸맞는 자로 키우고 싶은 것도
역몽 逆夢 실제 사실과는 반대인 꿈 가라르에서 짧은 만남을 가진 둘은 첫사랑을 했을 때와 같이 서로에게 열정적이었다. 기술의 발달로 시간만 맞으면 수시로 화상 통화가 가능했다. 나누가 밤에 쉬고 있을 때, 순무는 다음 날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휴대 전화 조작이 서툰 순무는 사용이 편리한 스마트 로토무를 사용해 나누에게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내기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와일드 에리어에 도착한 나누는 드넓은 벌판을 보고 감탄했다. 여기저기서 트레이너들이 풀숲을 헤맸고, 포켓몬이 지나가는 트레이너들을 먼저 공격하기도 했다. 빨간 불빛의 기둥이 새어 나오는 구덩이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낯선 사람이 다가와서 쓸 거냐고 물었다. 빛의 정체가 뭔지 몰라서 고개를 저으면 자기가 쓰겠다고 하며 구덩이 안으로
나누는 다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나옹들의 밥그릇에 사료를 얼마나 부어야 하는지, 간식을 줄 시간은 몇 시인지, 놀아 달라고 하면 장난감들이 어디 있는지. 여태 파출소를 오랫동안 비운 적이 없었기에 걱정이 앞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옛 동료 둘이 여전히 알로라에 머물고 있었고 그들이 파출소를 봐준다고 한 것이었다. 가장 큰 문제였던 나옹들 걱정은
호연 지방을 떠난 나누는 기차를 타고 반나절을 달려 저녁 늦게 집에 도착했다. 부모는 한 달 만에 보는 아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검회색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머리가 좀 길었네, 라는 어머니의 말에 깔끔히 잘라야겠다고 생각했다. 뙤약볕 아래를 누볐더니 피부도 보기 좋게 잘 탔다. 아버지는 항상 비실비실해 보이는 아들이 건강해 보여서 좋다며 농담을 했다.
안정을 찾은 순무가 안 그래도 피곤할 텐데 또 힘을 뺐다며 사과하자 나누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팔팔한 걸 보니 젊음이란 게 무섭긴 무섭다고 생각한다. 몸을 씻은 뒤 옷을 가지런히 차려입은 후에는 순무를 도와 방에서 버릴 것들을 정리했다. 낡은 책들을 들고 창고 옆 쓰레기를 분리하는 곳으로 향했다. 종이류를 모으는 큰 플라스틱 박스에
오후에는 둘만의 비밀을 위해 산으로 향하는 뒷길을 올랐다. 시원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서서히 해가 지는 길을 올라 몸이 근질근질했을 포켓몬들을 내보낸다. 확실히 진화를 했기 때문인지 이제 나인테일은 눈빛에 의욕이 가득했다. 순무는 그 마음을 몰랐던 것에 다시 미안함이 떠올랐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포켓몬들을 위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훌륭한 트레이너가
가까이 달라붙어 사랑스럽다는 듯이 어루만지고 잡담을 나누다 보면 시간이 금방 흘렀다. 즐거운 때는 빠르게 지나가는 법이다. 낮과 저녁 사이에 별채로 온 것 같은데 벌써 저녁이 되었다. 둘은 저녁을 먹으러 길을 내려가면서 손을 잡고 갔다. 손바닥 사이로 땀이 스며 나왔지만 차분한 여름 바람이 그것을 말려 주었다. 주인장은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고 또 고생
여전히 다정하게 구는 나누를 보며 순무는 약간 걱정이 가셨다. 그래, 사랑을 하면 다 그런 것 아니겠어. 상대방을 지독히도 원하는 것은 순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나누의 손을 먼저 잡았던 것이다. 나누는 시간이 있는 동안 책을 보기로 했고 순무는 나인테일과 함께 별채 밖으로 나가 아름다운 자태를 다듬어 주었다. 백금빛
밤이 깊어 갈수록 태풍의 위력도 강해졌으나 둘은 태풍이 별로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는 것은 생활 리듬이 깨져 두려울 만한 일이긴 했다. 저녁에 잠깐 잠들었던 탓에 자정이 되었어도 깨어 있다. 나누는 책을 보며 드디어 공부에 집중했고 순무도 좌식 책상에 앉아 훈련 일지에 글을 써 내려갔다. 나누는 이따금 그 모습을 보았다. 멍하니 보기만
이래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누는 별 꿍꿍이 없이 순무와 방 안에서 비바람 부는 날의 정취를 즐길 생각이었는데 순무의 돌발 행동에 그만 저도 모르게 손을 잡아 버렸다. 아니,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잡지 않으면 다시는 못 잡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순무의 간절함이 담긴 눈빛을 못 본 척할 수가 없었다. 나누의
일주일째를 맞이하는 아침이 되었다. 저절로 평소와 같은 기상 시간에 눈이 떠진 나누는 인기척을 느꼈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린 뒤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나누가 아는 한 순무는 잠버릇이 고약하지 않다. 그런데 바로 옆에서 잘도 자는 중이었다. 끔뻑거리던 눈을 내리깔고 순무의 속눈썹을 보며 무슨 일 때문에 나누의 곁에서 잠을 청했을지 생각해 본다. 밤
순무는 그것이 벌이라 느껴졌고 나누는 그것이 죄라고 느껴졌다. 본인의 주제도 모르고 나누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고 관심을 가진 벌일까. 하지만 이래도 쉽게 눈을 돌릴 수 없다. 본인은 곧 떠날 몸인데 누구보다 순무와 가까워진 죄일까. 이제는 순무를 놓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놀란 순무는 나누가 왜 이러는지 궁금해서 가만히 있었다. 그 침착하던 나누가
순무가 태어나기 전에는 호연 지방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다. 그런 탓에 관광객도 줄어서 굴뚝산과 용암마을은 행여나 놀러 온 사람이 있으면 극진하게 대접을 해 주었다. 순무가 태어나자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여관이 대성하길 바라며 여관 이름을 따서 태어난 손자의 이름을 지었다. 순무는 어릴 때 어머니의 본가가 있는 잔디마을에서 조부모와 어머니와 넷이서
벌써 일을 한 지 6일째가 되었다. 순무가 돌아오는 소리에 잠에서 깬 나누는 일어나서 첫 휴일을 맞이하여 그동안 필요했던 것이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본다. 우산은 순무와 큰 우산을 같이 쓰면 되니까 사지 않는다. 옷도 딱히. 가져온 것들은 한 번도 안 입었다. 담배. 이유는 모르겠지만 요즘 자주 피우게 되는 것 같다. 순무가 샤워하는 동안 또 뭐가 필요
나누는 당황한 것을 감추기 위해 일어서서 담배를 피우고 오겠다고 했다. 비가 와서 창문을 열지 못하자 재떨이를 손에 들고 별채 입구로 향한다. 고무 재질의 슬리퍼를 신고 입구에 서서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어둠에 잠긴 채 비를 맞는 용암마을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게 되자 나누는 아까 들었던 순무의 목소리를
순무는 나누가 변명하기도 전에 잽싸게 방을 나가 버렸다. 나누는 그 뒤를 쫓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어째서 말주변도 없는 자신이 그런 잔인한 말을 위로라고 꺼낸 건지 도통 이해되지 않아서 더위에도 아랑곳 않고 창문을 열어 담배만 두 개비를 태웠다. 스스로가 한심해서 절로 욕이 나오며 한숨이 삐져나왔다. 그리고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오해해 버
다음날, 나누는 여전히 피곤했지만 그래도 일찍 일어났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자 옆에 누워 있던 순무도 일어나 앉는다. 어쩐 일로 일찍 일어났냐 묻길래 나누는 이유를 둘러대기 위해 턱을 매만진다. 어제 자기 전, 순무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비록 이틀이 지났지만 아침부터 자기 전까지 하루 종일 붙어 있다 보니 순무를 생각하는 마음이 변한 것
순무가 방으로 돌아왔을 때, 나누는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마치 처음부터 자기 것인 것처럼 방에 있던 밥상을 펴놓고서 연필을 굴리며 공부에 몰두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누가 고개를 들었고 자신을 쳐다봐서인지 순무는 깜짝 놀라버린다. 아직 다른 사람이 방에 있는 것이 낯선 모양이다. 그러고는 무슨 책을 읽냐고 물으며 이불 위에 털썩 앉는다. "
면접을 본 다음 날, 나누는 신세를 진 친척 집에서 도망치듯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부모는 당연히 기나긴 잔소리를 했고 친척들은 나누의 진짜 속마음도 모르고 그를 응원했다. 또다시 용암마을로 가는 길이 벅차긴 했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짐이 든 보스턴백과 친척들이 챙겨준 것들이 너무 무거워 어깨뼈가 으스러질 것만 같았지만 이 고통만 참으면…… 이라는 생
친척네에는 외아들이 한 명 있긴 했으나 나누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데다 사회생활을 하러 다른 지방에 간 지 오래였기에 지금은 친척 아저씨와 아주머니, 에나비만 살고 있었다. 명절마다 사촌 형이 본가로 오기 때문에 방과 물건들은 그대로 둔 상태다. 사촌이 입던 옷을 받아 그걸로 갈아입고, 집 안에 걸린 가족사진들을 보며 기억 속의 사촌을 떠올려 본다.
* 이야기의 기반이 되는 썰의 일부 : https://radiyyo.postype.com/post/5712334 미몽 迷夢 무엇에 홀린 듯 똑똑하지 못하고 얼떨떨한 정신 상태, 혹은 헛된 꿈 꿈, 그것은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사그라드는 것. 꿈, 그것은 감은 눈 속에선 선명하지만 뜬 눈 속에선 잊히는 것. 꿈, 그것은……. 관동의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 순무는 나누가 고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서 질문을 했다. 정말로 관심이 없는 태도였지만 열심히 의견을 말해 주어서 속으로는 잔뜩 신이 났다. 그런데 잘 떠들던 나누의 안색이 갑자기 나빠진 것을 보자 걱정이 되었다. 뒤늦게 피로가 몰려오기라도 한 건지 굳은 표정으로 호수만 보길래 가슴이 덜컥거렸다. 괜찮냐고 물으면
따분한 자유시간을 같이 보낼 사람이 먼저 자신을 찾아서 다행이었다. 순무는 성도의 유적인 두 개의 탑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누는 그를 데리고 내일 다 같이 가서 볼 두 개의 탑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미리 보면 재미없지 않겠느냐 물으니 내일은 자유 시간에 가는 게 아니잖아요, 하고 꽤나 맹랑한 대답을 한다. "이 길이 다 단풍나무라서 가을에 오면
순무는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오른손에 아직 연기가 피어오르는 담배를 들고 나른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은 나누가 했던 말-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겠다던 말에 어떻게 대답했더라? 사실 대답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약간 당황한 나머지 멍청하게 나누를 쳐다보았던 것 같다. 그 표정을 보고 나누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끊임없는 생각들은 순
봄기운이 만연한 어느날의 아침, 호연 고등학교의 체육 교사 순무는 학생들의 복장 단속을 위해 교문 입구에 서 있었다. 가장 학생들이 많이 들어오는 정문 앞에 선 그는 담당 학생과 함께 둘이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복장이 단정치 못한 학생이 있는지를 살폈다. 아직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모두들 교복을 제대로 갖춰 입고 있다. 왼손에 찬
그러니까, 열심히 노인분들을 도와드리며 숨어지내던 와중에 손녀가 할머니네에 놀러왔고 그 때 둘이 처음 만났다는 것이다. 피오니는 여자친구가 너무나 좋단다. 그 피오니가 사랑을? 순무는 약간 과장스럽게 놀리는 척을 해보였다. "누가 먼저 고백했냐? 너지?" 왼손으로 턱을 괸 상태에서 턱짓을 하면 피오니는 고개를 저었다. 순무는 낄낄 웃고, 자세를 바르게
짧은 시간을 뜨겁게 보낸 이후 둘은 서로에게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권수가 호연으로 돌아가고나서 순무는 다시 삶의 활기를 되찾았다. 더 열심히 훈련을 하고 더 열심히 공부를 하며 가라르에서 이뤄지고 있는 다이맥스 현상 연구와 홍보에 일조했다. 불꽃이라는 뜻을 풀어낸 187번의 등번호를 뜨겁게 빛내기 위해, 권수와 자신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휴일에도
사천왕 자리를 하나 꿰찬 이후로는 편히 쉬어본 적이 없었다. 여름휴가 때마저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갔다. 평소에는 치고 올라오는 젊은 트레이너들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 특훈에 전념하곤 했다. 대부분의 트레이너들이 마지막 관문인 권수에게 지는 경우가 많았다. 아깝고 아쉬운 만큼 못된 말이나 보복도 끊이지 않았다. 그런 것엔 신경쓰지 않았다. 나쁜짓을
길기도 길었지만, 아직은 짧은 순무의 인생 중 일부분은 빠르게 흘러갔다. 가만히 앉아서 돌이켜보니 스스로도 깜짝 놀랄 지경이다. 언제 상처약을 챙기고 모험을 떠났는지, 언제 뱃지를 따고 리그에 나갈 만큼 성장했는지, 또 언제 최고의 자리에 도전을 했는지, 어떻게 지금 여기에 있는 건지. 거짓말을 했음에도 선생님을 만난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운
계절은 봄이 되고 권수의 예상대로 순무는 처음으로 참가한 호연 리그에서 일찍이 돌아왔다. 하지만 가장 바쁜 시기인지라 권수는 며칠동안 집에 돌아올 수 없었다. 리그장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순무가 잘 있을지 걱정이 되어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 목소리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패배에선 감출 수 없는 쓴맛이 나는 것이다. 리그가 어느정도 마무리 되자 권수는
불미스러운 일이 지나가면 일상은 되돌아왔다. 순무는 차근차근 배워나가며 체육관에 도전해서 뱃지를 따기 시작했다. 용암체육관에 도전할 때에는 오랜만에 집에 들러 부모님을 만나기도 했다. 권수는 내년 리그에 순무를 출전시키는 것이 목표였기에 업무를 처리하면서도 순무가 어디에 강한지, 어디가 약점인지를 분석하곤 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순무가 리그에 나갈
온천 관광지로 유명한 용암마을 출신인 순무는 한적하며 고령층이 많은 그곳에서 유달리 눈에 띄는 아이였다. 얌전히 있지 못하고 금방 흥분하는 성격에다 항상 넘어져 상처를 달고 다니는 천방지축이었다. 마을 어른들은 활기차게 커가는 순무를 지켜보며 항상 웃었지만 부모님은 그럴 수 없었다. 사고를 치진 않을까, 실례를 저지르진 않을까, 회초리도 들어보였지만
1 국제경찰 칼로스 본부의 취조실은 비교적 깔끔한 인상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군데군데 때가 묻어있고 벽에는 칠갑이라도 했었는지 거무스름한 자국도 남아있다. 피가 오랜 시간이 지나면 색이 검게 변하더랬다.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된 지가 오래되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한 명을 끌고 와서 족치는 것이 가능했다. 본부의 요원들이 잠복근무를 통
순무는 나누의 표정을 보고는 괜한 소릴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나누는 고개를 젓고나서 순무의 눈을 바라보며 괜찮다고 말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입을 여닫던 순무는 표정을 바꾸고 가까스로 미소를 지었다. 평소의 분위기로 돌아와선 보기 흉하니 면도나 하겠다며 의자에서 일어나 사라졌다. '참 복잡한 사람이군.' 매사에 이성적이고 냉정하기까지
나누가 순무의 연락을 받은 것은 호텔로 돌아가기 전이었다. 차를 다 마신 빈 컵을 순무에게 건네주고, 어색하지 않도록 농담 몇마디를 하고는 그가 일을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여전히 이른 퇴근길에 동행하며 신변잡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수사는 아직도 진전이 없었고 동료들은 기진맥진하며 가라르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얘기하면 순무는 유감을 표했다.
다음날도 아침은 똑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어제 손으로 세탁해 밤새 널어둔 챌린저 복장이 나누의 가방 안에 곱게 개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순무네 아파트 단지를 향해가면 순무는 나누의 말대로 미리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좁고 냄새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초인종을 누르면 바로 문이 벌컥 열려 깜짝 놀란다. 미리 나와있진 않았지만 현관에서 대기 중이
다음날 아침, 나누는 재깍 일어나서 순무를 데리러갈 준비를 했다. 정장을 갖춰입고, 오늘은 가방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빼놓고 평소에도 들고다니는 호신용품들을 정리해넣었다. 마지막으로 잊은 게 없는지 점검한 뒤 호텔을 나서서 간단히 배를 채웠다. 그리고는 스타디움이 있는 쪽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순무는 일찍이 아파트 단지 입구에 서서 나누를 기다리고
그 길로 호텔로 돌아가 본부에 올릴 보고서를 작성하고, 바로 쓰러져서 잠이 든 나누는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본부에서 온 연락을 받고는 잠시 머릿속이 멍해졌다. 추가 인력을 투입하겠다고 하긴 했는데, 아니 그게 왜 이렇게 되는 거지? 나누는 방금 통화를 끝낸 휴대기기를 노려보며 머릿속으로 정리를 했다. 그러니까, 추가 인력이 공급되긴 하는데, 칼로스와
이른 새벽, 칼로스에서 가라르로 이어진 기차에 몸을 실은 나누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동료 두 명도 맞은편에 앉으며 일반 시민인 것처럼 잡담을 하지만 나누는 딱히 입을 열진 않고 어스레한 창 밖만 보았다. 칼로스에서는 얼마 전 포켓몬 트레이너의 자격을 시험하는 체육관 문화에 대한 폐단을 지적하며 이런 악습은 사라져야한다는 주장을 담은 종이들이
오랜만에 밟는 호연의 땅은 여전한 열기를 머금고서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하지만 지금같은 계절엔 그다지 반갑지 않다. 호연의 여름은 그 어느 지방보다 덥기 때문이다. 옷을 자주 갈아입은 것은 성가시지만 어차피 오래 머무를 거니까, 하고서 옷가지들을 마구 챙긴 뒤에 이미 며칠 전에 택배로 부쳐둔 상태이다. 아마 주인보다 짐이 먼저 도착해있을 것이다. 성도
* 연령반전 주의 Runner's High 장시간의 달리기나 운동 후 느껴지는 도취감 생필품을 사들고 돌아가는 길에, 순무는 만나고 싶지 않던 무리와 맞닥뜨렸다. 각자의 주거지인 이 엔진시티의 길거리에서 마주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들을 보고 흠칫 놀란 것을 감추기 위해 순무는 발길을 돌리고 다른 길로 나아가려 했다. 그러나 무리는 손가락질
짐이라고 해봤자 말리에 시티에서 사준 옷가지가 다였다. 나누는 무거운 마음으로 그것을 한데 모아 외근용으로 쓰는 가죽 가방에 차례로 넣었다. 순무는 말없이 소파에 앉아 나누가 하는 짓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누는 일부러 그 쪽으로 눈길을 주지 않았다. 저 아이의 얼굴을 보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며 묵묵히 청년이 쓸 생필품을 찾아 이곳
며칠 후, 파출소에는 낯익은 이들이 낯설게 방문하였다. 그들은 멜레멜레의 할라와 아칼라의 라이치였다. 요 며칠동안 나누는 순무를 달래주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던 터라 예고도 없이 오랜만에 만나는 손님들을 미적지근하게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달래준다는 명분도 갖다붙이기엔 민망할 정도로 둘은 어떠한 관례처럼 눈이 맞으면 잠자리를 가졌다. 전날 밤에
분위기가 가라앉게 되자 나누는 순무의 손을 이끌고 파티션을 당긴 뒤 그 너머로 향했다. 찝찝해진 옷을 벗고 벗겨서 다용도실의 세탁기에 넣는다. 어쩐지 이제는 껄끄러운 것이 없어진 나누는 둘 다 날것의 알몸이어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순무에게 먼저 씻으라고 욕실로 그를 밀어넣었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에서 슬리퍼만 질질 끌며 나옹들의 침입을
* 나누 x 젊은 순무 어김없이 비가 우산을 치고 내리떨어져가는 소리를 들으며, 찰박이는 길을 따라 걸은 뒤 파출소 문을 열면 청년은 화들짝 이쪽을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린다. 돌린 얼굴은 세워진 무릎에 맞닿아있어서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다. 나누는 파출소의 출입구에서 우산을 접은 뒤에 빗물을 탈
순무는 방학을 꽤 우울하게 보냈으나 가을에 있을 전국대회의 육상종목에 참가해야했기에 거기에 온 신경을 쏟아부으며 마음의 상처를 회복해갔다. 방과 후에는 체육교사와 부원들과 체력단련 및 달리기를 했고 개인 기록을 갱신하기 위해 노력했다. 주말에도 학교 운동장을 달리고 너무 더운날엔 실내 체육관에서 줄넘기 등을 하곤 했다. 여름 태양에 순무의 살갗은 보기
일부러 발을 걸어 넘어뜨린 걸 알았지만 순무는 그것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나누가 물건을 들어주거나 그에게서 부축받은 뒤에는 언제나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누는 조금씩 양심이 찔리는 것을 느끼긴 했으나 심하게 다친 건 아니잖아, 라는 엉뚱한 이유를 붙여 순무의 성의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순무의 발목은 서서히 회복해갔다. 어느샌가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충격을 받았다. 이층의 방에서 공부를 하던 나누는 아버지가 우는 소리를 듣고 아래층으로 내려왔고 바닥에 쓰러진 채 그렇게 슬프게 우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그들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멀리 다른 곳에 살고 있어서 아주 어릴 때밖에 못 만났기에 그 가족은 모두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매번 명절이나 기념일마다
바다는 언제나 모든 것을 품어주리라 생각된다. 아무도 찾지 않은, 아침해조차 오지 않은 어슴푸레한 새벽빛에 잠긴 바다를 보며 아무리 좋아한다 말해도 바다는 모든 것을 품을 뿐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건장하고 어엿한 청년인 권수는 새벽 일찍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대문을 열고 나가 바다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꽤 감성적인 취미가 있었다. 그리고 보랏빛 바다
저 아인 참 재밌단 말야. 아단은 또래아이들의 함성 소리를 즐기며 맞은편에 선 소년을 바라보았다. 때는 봄날, 장소는 호연지방의 포켓몬 트레이너 양성 학교의 운동장. 정규과정으로 편성된 학생 간의 일대일 배틀 시간이었다. 넓디 넓은 운동장에서 아단은 대굴레오를 꺼냈다. 대굴레오는 쿵 소리를 내며 나왔고, 늘 그렇듯 학급 아이들의 귀엽다는 칭찬에 늠름한
그해 겨울은 웬일로 매서웠다. 수도가 꽁꽁 얼어붙고 눈이 쌓였으며 온기를 모두 앗아갔다. 불꽃타입 포켓몬들의 수요가 늘어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풀숲을 헤매며 그들을 쫓았다. 포켓몬들은 무자비한 포획과 추운 날씨에 어딘가로 도망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은 포켓몬만이 아니었다. 순무는 어느날 잠에서 깨자 침대에서 함께 자고
Salad Days 철부지 시절, 풋내기 시절 1 포켓몬의 기술인 달콤한 향기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제조된 스킨을 손바닥에 흘린 뒤 얼굴에 문댄다. 향긋하고 묵직한 스킨 냄새가 기분좋게 만들어준다. 순무는 기분좋은 나머지 좋아하는 곡을 콧노래로 흥얼거린다. 듣기 무난한 멜로디지만 가사는 애달픈 이별을 담아낸 곡이다. 그즈음, 마찬가지로 샤워를 끝
어찌된 일인지 별로 사람들이 찾지 않는 말리에 정원에 언덕이 하나 생겼다. 어찌된 일인지 한번은 우르르 몰려왔다가 파도처럼 빠져나가고 다시는 그곳을 찾지 않았다. 어찌된 일인지 그 작은 언덕은 평화로움을 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어쨌든 그것을 무덤이라 불렀다. 구즈마는 불꺼진 포 파출소 앞에 한참동안 비를 맞으며 삐딱하게 서있었다. 아무
쌀랑히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 핸섬은 쫄딱 젖은 채 걸어간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엔 흙이 묻은 구둣발을 바닥에 탁탁 털고 들어가기 전 경비에게 경찰수첩을 보여준 뒤 안으로 들어간다. 본부 건물로 들어온 그는 머리칼과 옷의 물기를 대충 털어낸 뒤 먼저 수사과 사무실 쪽으로 터벅터벅 걷는다. 계단을 오르고, 수사과 앞에 선 핸섬은 작은 한숨을 쉰 뒤 태
Under Control 지배되는 요즘들어 재미난 일이 생겼다. 생겼다기보단 알았다는 것도 좋은 표현일 것이다. 소속을 잃은 인간은 다시 속하고 싶은 곳을 찾으러 방황한다. 내 경우엔 내가 그 속하고 싶은 곳이다. 누군가를 품는 곳. "수행하고 왔어. 힘들어…." 업무를 보다가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녀석을 한번 쳐다본다. 내 옆에 털썩 앉으며 허리
Sly & Silly 교활한 & 어리석은 난 착한 사람이지만 좋은 사람은 아니다. 착함은 나쁜짓을 하기 좋은 구실일 뿐이다. 앞에서 웃기만 해도 뒤에서 뭘하는지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장, 속임수, 배신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내가 누누이 말했지." 몬스터볼을 모두 빼앗긴 가엾은 청년에게 말했다. "아저씨는 착한 사람이지만 좋은
오래된 관습이 있다면, 모두들 그것을 당연시하고 따를 것이다. 관습을 거스르는 자는 집단에서 떨어지고 만다. 관습을 파괴하는 자는 공포감을 조성한다. 어김없이 가랑비가 내리는 포마을의 우중충한 풍경을 바라보며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던 나누는 멍하니 옛추억에 잠긴다. 비는 오지 않고 흐리기만 하던 날의 오후. 파출소 입구에 쭈그리고 앉아 나옹을 쓰